항목 ID | GC00101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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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菡 |
영어공식명칭 | I Ham |
이칭/별칭 | 자실(子實)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권오영 |
[정의]
조선 전기 성남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자실(子實)이다. 아버지는 돈녕부참봉을 지낸 풍성군 이의번(李宜蕃)이며, 할아버지는 이추(李抽)이다.
[활동사항]
어려서부터 용맹스럽고 활쏘기에 능하였으며 20세에 무재(武才)로 뽑혀서 궁중을 수비하는 장교가 되었다. 1491년(성종 22) 오랑캐가 북방을 침범하자 좌의정도원수(左議政都元帥) 허종(許琮) 휘하의 장교로 종군하여 오랑캐를 정벌하는데 공을 세웠다. 이 공로로, 회군 뒤에 수의부위(修義副尉)와 정략장군(定略將軍)에 임명되었고, 1505년(연산군 11)에는 건공장군(建功將軍)에 올랐다.
중종반정(1506)에 적극 참여하여 정국공신(靖國功臣)에 포상되고, 2계급 특진하여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임명되었다. 1507년(중종 2) 품계가 가선대부에 올랐고, 이듬해 삭주부사 겸 병마첨절제사 해풍군(海豊君)에 봉해졌다. 이후 네 고을의 수령직을 역임하였는데 선정을 베풀어서 명성과 치적이 높았다.
1529년(중종 24)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귀국 뒤에는 봉조하(奉朝賀)에 임명되었다. 1534년(중종 29) 순천부사 재임중 병으로 죽었다. 이에 국왕은 제문과 함께 예조좌랑 김기(金璣)를 보내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의정부좌참찬에 추증되었다.
[묘소]
묘는 수정구 고등동에 있다. 아버지 이의번의 묘 남쪽에 있다. 부인인 정부인 밀양박씨와 원형 쌍분으로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