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8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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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廷夔 |
영어공식명칭 | Lee Jeong-gi |
이칭/별칭 | 일경(一卿),귀천(歸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오영 |
[정의]
조선 후기 성남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일경(一卿), 호는 귀천(歸川)이다. 아버지는 도호부사를 지낸 이제(李穧)이며, 어머니는 임서(林笭)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좌랑을 지낸 이경류(李慶流)이며, 증조부는 이증(李增)이다. 이정룡(李廷龍)이 아우이다.
[활동]
사마시와 문과를 거쳐 중앙의 주요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639년(인조 17) 진사시에 합격하고, 1648년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사간원정언, 성균관전적을 거쳐 1656년(효종 7) 홍문관수찬으로 민회빈(愍懷嬪) 강씨(姜氏)의 누명을 벗게 하려고 상소하다가 죽은 황해도관찰사 김홍욱(金弘郁)을 신원(伸寃)하게 하였다. 그뒤 승지, 예조참의, 성균관대사성을 거쳐 현종 초에 대사간, 이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664년(현종 5) 경기도관찰사가 되었으나 모함을 받자 사직하였다. 1666년 한성부좌윤 겸 우부빈객이 되고 1669년 이조참판이 되었다. 1671년 대기근이 있을 때 한성부좌윤으로 진휼청(賑恤廳)의 제조(提調)가 되어 굶주린 백성의 구제에 힘썼다. 저서로는『월파만록(月坡漫錄)』과 『순외편(順外編)』이 있다.
[묘소]
묘는 중부면 번천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