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8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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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仁孫 |
영어공식명칭 | Lee In-son |
이칭/별칭 | 중윤(仲胤),풍애(楓厓),충희(忠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소은 |
[정의]
조선 전기 성남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중윤(仲胤), 호는 풍애(楓厓)이다. 참의 이지직(李之直)의 아들이다. 할아버지는 둔촌공(遁村公) 이집(李集)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고려말 생원(高麗末 生員) 이당(李唐)이다. 외할아버지는 지주사(知州事)인 이원보(李元普)이다. 부인은 별장(別將) 노신(盧信)의 딸인 정경부인(貞敬夫人) 교하노씨(交河盧氏)이며, 이극배(李克培), 이극감(李克堪), 이극증(李克增), 이극돈(李克墩), 이극균(李克均) 오형제를 낳았다.
[활동사항]
1411년(태종 1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17년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 검열에 발탁되었다. 그 뒤 사헌부감찰을 거쳐 1429년(세종 11) 천추사(千秋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이어 형조좌랑, 예조좌랑, 집의, 판군자감사, 예조참의, 경상도관찰사, 형조참의, 대사헌, 한성부윤 등을 역임하였다.
1453년(단종 1)에는 한성부윤으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형조참판을 거쳐, 1454년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정권을 잡게 되자 호조판서에 승진되고, 1455년 세조의 즉위와 함께 원종공신(原從功臣)2등에 봉하여졌다. 이어서 판중추부사로서 판호조사를 겸임하고 우찬성을 거쳐 1459년(세조 5) 우의정에 오른 뒤 곧 치사(致仕:나이가 많아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하였다.
[묘소]
묘소는 여주군 능서면 신지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충희(忠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