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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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戡 |
이칭/별칭 | 언신(彦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홍갑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우계(羽溪). 자는 언신(彦信). 아버지는 문과를 거쳐 참판에 오른 이광식(李光軾)이며, 어머니는 이세응(李世應)의 딸 함안이씨(咸安李氏)이다. 할아버지는 동돈녕(同敦寧) 이지방(李之芳)이다.
[활동사항]
1543년(중종 38)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그해 식년문과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다. 1545년(명종 즉위년) 예문관 봉교(奉敎)로 있으면서 중국에 보내는 자문(咨文)의 글씨를 잘 써서 칭찬을 들었으며, 이어 사간원 정언(正言)이 되어 윤원형(尹元衡), 윤춘년(尹春年)과 결탁하여 사류(士類)를 공격하는 데 가담하였다. 이어 사헌부, 홍문관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특히 무재(武才)를 인정받아 1552년 함경도 순변사(巡邊使) 이준경(李浚慶)의 종사관(從事官)에 임명되기도 하였고, 종성부사로 변경수비를 맡기도 하였다.
1558년에는 성절사(聖節使)로 중국에 다녀오기도 하였으며, 승지, 경상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뒤 윤원형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량(李樑)이 중용되어 국정을 전단하자 시세에 좇아 그의 심복이 되었다. 이량의 후원하에 병조참판, 도승지, 형조참판 등 요직을 두루 거쳐 1563년 대사헌에 기용되었다. 이때 이량의 사주로 이문형(李文馨), 허엽(許曄), 기대승(奇大升), 윤근수(尹根秀) 등 당시 명망 있던 사림을 탄핵하여 밖으로 내쫓으면서 다시 한번 사림에게 대대적인 타격을 가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를 막으려는 심의겸(沈義謙)의 노력으로 도리어 홍문관부제학 기대항(奇大恒)에 의하여 탄핵받아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되었다. 명종 말엽 윤원형 세력이 몰락하고 사림들이 득세하자 양사 및 홍문관에서 여러 차례 죄를 주자고 주장하였으나 왕의 중재로 무마되었다. 그뒤 1581년(선조 14) 천재가 심하여 대사면이 단행되자 방면되었다.
[묘소]
묘는 성남 분당구 대장동에 있다. 16세기 이후 우계이씨들이 낙생면 대장동 일원에 입향하여 동족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