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5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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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卓然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소은 |
[정의]
조선 전기 성남 지역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상중(尙中), 호는 중호(重湖). 판관을 지낸 윤문형의 손자이고, 우봉현령 윤이(尹伊)의 장남이다. 어머니는 김윤선의 딸이며, 부인은 송맹장의 딸이다. 아들은 윤경원, 윤길원이다.
[활동사항]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1558년(명종 13) 진사시에 합격하고 1565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소속되었다. 승정원주서를 거쳐 1568년(선조 1) 전적, 사간원정언을 역임하였고 천추사(千秋使) 서장관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홍문관수찬으로 지제교검토관춘추관기사관을 겸임하였으며 『명종실록』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1574년 주청사(奏請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와 사헌부지평, 장령, 교리, 검상, 사인 등을 역임하고 이듬해 외직으로 동래부사·상주목사를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1580년 좌승지, 도승지, 예조참판을 지내고, 1582년 영남지방에 대흉년이 들자 경상도 관찰사로 특채되었고, 이듬해에 형조참판으로 형조에서 죄인을 다스릴 때 임산부를 장형(杖刑)에 처하여 낙태치사하게 한 책임을 지고 좌천되었다가 1585년 경기도 관찰사에 올랐다. 이후 한성부판윤으로 승진하였으며 세 차례에 걸쳐서 형조판서와 호조판서를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모시고 북으로 가던 도중 검찰사(檢察使)에 임명되었는데, 그때 함경도에 피난하였던 왕자 임해군(臨海君)과 순화군(順和君)이 적의 포로가 되자 왕명으로 함경도 순찰사가 되어 의병을 모집하고 왜군을 방어할 계획을 세우던 중 객사하였다.
[저술 및 작품]
윤탁연은 송익필(宋翼弼), 이산해(李山海) 등과 팔문장가의 한 사람으로 시문에 능하였다. 저서에 『계사일록(癸巳日錄)』, 『중호선생문집』이 있다.
[묘소]
윤탁연의 묘는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에 있다가 양평으로 이장했으며, 행장은 이숙, 신도비명은 남용익이 썼다.
[상훈과 추모]
1591년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에 책록되고 칠계군(漆溪君)에 봉해졌다. 사후 함흥(咸興)의 창의사에 제향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