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518 |
---|---|
한자 | 吳命始 |
영어공식명칭 | O Myeongsi |
이칭/별칭 | 이로(伊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오영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이로(伊老). 해주오씨 18세손. 월곡공파. 아버지는 오수석(吳遂錫), 어머니는 남양서씨, 청주한씨이다. 할아버지는 선조대에 전라도수군절도사를 지낸 오도홍(吳道弘), 증조부는 승정원좌승지를 지낸 오달권(吳達權), 고조부는 산음현감을 지낸 오윤함(吳允諴)이다. 오윤함의 형은 오윤겸(允謙)으로 성혼의 제자이며 노서(老西)를 이끈 인물이어서 그의 가계 역시 이런 영향 아래에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부인은 달성서씨이다. 슬하에 2남 두었다. 큰아들 오언빈(吳彦賓)은 사마시,문과를 거쳐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에까지 올랐다. 둘째아들은 오언신(吳彦臣)이다.
[활동사항]
1715년 사마시에 입격한 후 참봉에 올라 이후 의금부도사를 역임했다. 『영조실록』에는 오명시와 관련된 세 건의 기사가 확인된다. 두 건은 1728년(영조 4) 무신란(戊申亂)의 공모자로 그가 아들인 오언빈과 함께 혐의를 받게 되었는데,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 석방되었다고 하였다. 또 한 번은 아들 오언빈이 문과 정시(庭試)에 급제한 기사에서도 언급되었다. 즉 정시의 전시(殿試)에 뽑힌 6명 가운데 오언빈이 있는데, 그의 아버지 오명시는 본명이 오명윤(吳命尹)으로 경종대에 ‘윤(尹)’자 때문에 누차 낙점되지 않아 ‘윤’자를 ‘시(始)’자로 고쳤으니 이는 해괴한 일이다 하여 오언빈의 발방을 명하고 있다.
『숙종실록』에는 할아버지 오도홍에 관한 한 건의 기사가 확인된다. 실록에 따르면, 1686년(숙종 12) 4월 병조판서 이숙(李䎘)은 옛 정승 오윤겸의 족손인 오도홍이 그 사람됨이 쓸만한데도 내외 과직에 주의(注擬)하여도 오랫동안 낙점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의정 남구만(南九萬)도 대간들도 탄핵대상에 따라 탄핵을 청하였다가 다시 환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면서 이숙의 주청을 거들었다. 이에 대해 숙종은 유념하겠다고만 답하고 있다.
[묘소]
묘는 분당구 대장동에 있다. 대장동 무두만이(舞頭滿以)는 해주오씨의 세거지이다. 통훈대부 산음현감을 지낸 오윤함(吳允諴)의 묘를 이곳에 조성한 뒤, 그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오윤함의 호인 월곡(月谷)을 따서 월곡공파를 이루었다. 오윤함은 선공감역을 지낸 오희문(吳希文)의 셋째아들이요, 영의정을 지낸 추탄공 윤겸의 아우가 된다. 이곳은 원래 추탄공이 자리잡은 곳인데, 동생 오윤함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이곳에 장사를 지내면서 그 후손들도 살기 시작했다. 그 아들 오달정은 승정원 좌승지이다. 오달권은 오명시의 증조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