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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1512
한자 吳達濟
이칭/별칭 계휘(季輝),추담(秋潭),충렬(忠烈)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생년 1609년연표보기
몰년 1637년(인조 15)연표보기
본관 해주(海州)
대표관직 부교리(副校理)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병자호란삼학사(三學士)의 한 사람.

[가계]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계휘(季輝), 호는 추담(秋潭). 오경민(吳景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오희문(吳希文)이고, 아버지는 오윤해(吳允諧)이며, 어머니는 최형록(崔亨綠)의 딸이다.

[활동사항]

1627년(인조 5) 사마시에 합격, 1634년(인조 12) 26세에 별시(別試)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전적(典籍),병조좌랑(兵曹佐郞), 시강원 사서(侍講院司書),정언(正言), 지평(持平), 수찬(修撰)을 거쳐, 1636년(인조 14) 부교리(副校理)로 재직할 때 주화파 최명길(崔鳴吉)을 탄핵하는 소를 올렸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에 들어가 화의를 끝까지 반대하였고, 인조가 청군에 항복하자 윤집(尹集)과 더불어 자진해 적진에 잡혀가 청나라로 끌려갔다. 적장 용골대(龍骨大)의 회유와 협박에도 끝까지 굴하지 않아 심양성(瀋陽城) 서문 밖에서 윤집, 홍익한(洪翼漢)과 함께 처형당하였다.

[저술 및 작품]

그는 명나라의 묵매 화풍에 영향받은 묵매화(墨梅怜)에 뛰어났고, 「묵매도(墨梅圖)」2점이 전한다. 좌승지,영의정에 추증되었고, 광주(廣州) 현절사(顯節祠), 평택 포의사우(褒義祠宇), 홍산(鴻山) 창렬서원(彰烈書院), 영주 장암서원(壯巖書院), 고령 운천서원(雲川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충렬공유고(忠烈公遺稿)』가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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