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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1503
한자 永昌大君墓誌石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일반)
지역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4911[탄리로131번길 4-12]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주홍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묘지석
제작시기/일시 1623년(인조 1)연표보기
재질 대리석
높이 107㎝
너비 76㎝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처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5가 168-6[서빙고로 137]
소유자 국립중앙박물관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서 출토된 영창대군 이의(李㼁)의 묘지석.

[개설]

영창대군은 조선 선조의 14명의 왕자 중 막내이며, 인목왕후의 유일한 소생이다. 선조는 이미 세자로 책봉된 광해군(光海君) 대신 영창대군을 왕세자로 책봉할 것을 영의정 유영경(柳永慶) 등과 비밀리에 의논하였다. 그러나 선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자 서인(庶人)으로 강등되고 만 8세의 나이에 강화부사 정항(鄭沆)의 손에 참혹한 죽음을 당했다.

영창대군의 묘지석이 출토된 곳은 현재 위치로 보면 수인분당선 가천대역에서 봉국사 방향으로 가다 건우아파트 단지 못 미쳐 우측 탄리로 100여m 아래의 주택가 골목길이다. 이곳은 원래 영창대군의 묘역이 위치하였던 곳으로 1971년 성남시 도시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영창대군의 묘는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으로 이장되었는데, 이때 묘지석이 함께 수습되지 않고 그대로 남겨진 것으로 보인다. 같은 해에 도시가스관을 가설하는 공사를 하는 도중에 파손되어 방치되었다가 관계기관에 신고 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형태]

묘지석은 묘주의 사후 약력을 적어 상석 밑에 부장하는 것이다. 영창대군 묘지석은 조선시대인 1623년(선조 1)에 대리석으로 제작하였으며, 크기는 높이 107㎝, 너비 76㎝, 두께 20㎝이다. 비문은 신흠(申欽)이 짓고, 음기는 김천령(金千齡)이 해서로 썼다. 묘지석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6.10.12 [개설]의 역 명칭 수정 [개설] 영창대군의 묘지석이 출토된 곳은 현재 위치로 보면 분당선 경원대역에서 → 가천대역에서
2014.02.17 비문 수정 비문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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