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4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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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挺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홍갑 |
[정의]
조선 전기 성남 지역 출신의 문신·서화가.
[가계]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정연(挺然), 호는 죽창(竹窓). 전주부윤 안지귀(安知歸)의 증손이며, 공조판서 안침(安琛)의 손자이고, 병조좌랑 안처선(安處善)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최윤신(崔潤身)의 딸이다.
[활동사항]
1516년(중종 11)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519년(중종 14)에 현량과(賢良科)에 3등으로 급제하여 승정원(承政院) 주서(注書)에 임명되었다.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던 날 승지 공서린(孔瑞麟), 윤자임(尹自任), 한림(翰林) 이구(李構) 등과 함께 입직을 하다 투옥되었으나 이튿날 석방되었다.
뒤에 검열(檢閱), 주서(注書), 전적(典籍) 등을 거쳐 외직인 양성현감(陽城縣監)으로 나가서는 목민관으로 이름을 높였다. 그러나 1521년(중종 16) 신사무옥(辛巳誣獄) 때 송사련(宋祀連)이 바친 서기(書記)에 이름이 올라 있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곤양(昆陽)으로 유배되었다. 신사무옥은 기묘사화의 연장선상에서 남곤(南袞) 일파들이 사림에게 재차 반격을 가한 사건이었으며, 안정의 아버지 안처선과 8촌이며 좌의정 안당(安瑭)의 큰아들인 안처겸(安處謙)이 주모자로 처형된 사건이었다. 1537년(중종 32)에 사면되었고, 1545년(인종 1) 인종이 즉위한 후 천과(薦科)가 회복되어 다시 전한(典翰)에 제수되었다. 1546년(명종 원년) 8월 2일에 정6품 승의랑(承議郞)으로 성균관 전적에 보임되어 다시 관직에 나갔다. 정3품 당하관인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양성현감(陽成縣監)을 제수 받았으나 얼마 뒤 관직을 물러났다. 스스로를 죽창이라 부르며 거문고와 글, 화초 등을 즐겼고 특히, 그림에 뛰어나 매화와 대나무를 잘 그렸다.
[묘소]
안정의 묘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 산28번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