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3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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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南城西墩臺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산2-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주홍 |
성격 | 돈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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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연도 | 1753년(영조 28) |
관련인물 | 이기진 |
둘레 | 121m |
면적 | 998㎡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산2-1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진영.
[개설]
검단산 정상부에 축조한 2곳의 돈대(墩臺) 가운데 서쪽에 있는 것을 가리킨다. 돈대는 성을 쌓을 여건은 안 되지만 전략적인 요충지에 설치하여 적의 침입이나 정찰·탐색 활동을 사전에 방어하고 관찰할 목적으로 쌓은 소규모의 방어 시설물이다. 이곳은 남한산성 동쪽의 한봉과 함께 산성의 방어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점이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인들이 이곳에 호준포와 홍이포를 설치하고 방포를 하였는데 포탄이 행궁의 기둥을 맞추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건립경위]
1752년(영조 28) 광주유수 이기진(李箕鎭)의 건의로 이듬해 동돈대와 함께 검단산에 축조하였다.
[위치]
검단산 정상은 동서 방향으로 3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서쪽 봉우리가 가장 높고 중앙의 봉우리가 다음으로 높다. 신남성 서돈대는 가장 높은 서쪽 봉우리에 설치되었고, 중앙의 봉우리에 축조된 것은 동돈대(東墩臺)라고 부른다. 서돈대는 동돈대에서 서쪽으로 235m 떨어진 해발 532m 지점에 있다.
[형태]
신남성 서돈대의 둘레는 121m, 면적은 998㎡로 신남성 동돈대에 비하여 규모는 조금 작지만 시계(視界)가 더 좋다. 서쪽 부분 성벽이 5m 정도 결실되었고, 돈대의 내부도 훼손되어 원형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동쪽에 설치된 출입구와 외곽 성벽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성문은 동돈대와 마찬가지로 5매의 홍예돌로 구축된 출입구의 윗부분을 둥글게 틀어 무지개 모양으로 만든 홍예문(紅霓門)이며, 너비와 높이는 각각 152㎝이다. 측벽은 무사석(武沙石)으로 틈이 없이 다듬었으며 정교한 석재 가공 기법은 화성 성벽의 축조 기법과 유사하다. 봉화대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