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5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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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麟耈 |
이칭/별칭 | 인서(仁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홍갑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인서(仁瑞). 직제학공 남간(南簡)의 후손이다. 정조의 사부였던 봉조하(奉朝賀) 남유용(南有容)의 손자이며, 진사 남공보(南公輔)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목사 이종해(李宗海)의 딸 죽산이씨인데, 절행으로 정려(旌閭) 되었다. 배위는 대사성(大司成) 윤상후(尹象厚)의 딸 파평윤씨이며, 춘천부사를 지낸 남주헌(南周獻)의 아버지이다.
[활동사항]
1779년(정조 3) 남인구의 할아버지 남유용에게 시호(諡號)를 내릴 즈음에 그 집이 청한(淸寒)하여 음식 거리가 없고 그 손자가 이미 벼슬할 나이가 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정조가 음관(蔭官)의 벼슬을 내리라는 명으로 출사하였다. 1787년(정조 11)에 비안현감(比安縣監)으로 파견되어 목민관으로 임무를 원할히 수행하였고, 그뒤 1816년(순조 16) 경에는 능주목사(綾州牧使)로 임무를 다했다. 이밖에도 네 읍(邑)을 잘 다스린 공이 칭송되었고, 돈녕부(敦寧府) 도정(都正)을 역임하기도 했다.
[상훈과 추모]
증손 남상길(南相吉)의 공으로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묘소]
묘는 성남시 분당구 율동에 있다. 아들 남주헌(南周獻)이 지은 행장이 있으며, 참의 유한준(兪漢雋)이 지은 지(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