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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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垈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홍갑 |
[정의]
조선 후기 성남 지역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의령. 자는 공망(公望). 충간공(忠簡公) 남지(南智)의 후손으로, 정묘호란 때 순절한 충장공(忠狀公) 남이흥(南以興)의 증손자이며, 장악원 첨정을 지낸 남두극(南斗極)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증 호조참의 남영(南泳)이며, 어머니는 완흥군(完興君) 이원영(李元榮)의 딸 전주이씨이다. 윤민행(尹敏行)의 딸 칠원윤씨(漆原尹氏)와 혼인하여 아들 남익화(南益華), 남익태(南益泰)를 두었다.
[활동사항]
1676년(숙종 2) 무과에 합격하여 출사하여 어모장군을 지냈다. 재임 중 한양에 있을 때 부모의 기일을 맞아 귀성하다 한양나루에서 배를 타고 건너고 있을 때 태풍을 만나 배가 전복되어 애마(愛馬)를 잃고 혼자 돌아와 울었다는 고사가 전해진다.
[묘소]
남대의 묘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있었으나, 성남이 개발되면서 1971년 충남 당진군 대호지면 도이리로 이장하였다가 다시 이요당(李樂堂) 묘 아래로 옮겼다.
[상훈과 추모]
의림군(宜林君)에 봉해졌고, 사후에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