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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분견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0418
한자 廣州分遣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서승갑

[정의]

일제강점기 때 경기도 광주 지역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한 용인헌병분견대 소속 분견소.

[개관]

일제의 헌병경찰제하에 광주지역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한 남한산성 용인헌병분견대 소속의 광주지역 분견소로, 정식 명칭은 ‘남한산성 용인헌병분견대 광주분견소’이다. 일제는 조선 강점 전에는 일본 헌병을 주로 도시에 집중 배치되었으나, 강점 후에는 분산 배치 체제로 전환시켜 농촌까지 헌병분견소를 설치했다. 이들 헌병은 경찰과 함께 첩보의 수집, 의병 토벌, 범죄의 즉결 처분과 민사 쟁송의 조정, 집달리 업무, 세관 업무, 산림 감시, 민적 업무, 우편 호위, 검역, 방역 업무, 강우량 측정, 밀수입 등 경제 단속, 노동자 단속, 일본어 보급, 농사개량 업무 등 무려 30여종의 업무를 관할, 통제하였다.

[내용]

이처럼 강력한 권한을 가진 헌병과 경찰들은 전국의 헌병분견소, 순사주재소, 파출소 등에 배치되어 조선인의 일상생활을 감시 감독하였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성남지역에는 판교분견소와 송파진분견소가 설치되어 분할 관리했으나 1914년 3월에 관할 구역의 변경에 따라 통합되었다. 성남지역 4개면의 경우 경성헌병대 용인헌병분대 광주분견소가 관할하였고, 9월에는 광주헌병분견소에서 경찰의 업무도 수행하였다.

또한, 광주분견소는 주재소 등지의 독립운동가 등을 연행 호송하여 혹독한 고문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등 탄압 활동의 수행기관이었다. 특히 돌마면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한 한백봉 등은 광주분견소에서 4일간에 걸쳐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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