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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가어유의득명」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0300
한자 聽街語柳醫得名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전관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가(원작자) 미상
성격 야담

[정의]

유상(柳相)이라는 의원이 경기도 광주의 판교(板橋)를 지나던 중 어명을 받고 궁에 들어가 임금의 마마(천연두)를 고쳐주었다는 이야기.

[내용]

조선 후기의 야담집인 『청구야담(靑丘野談)』에 전한다.

유상이라는 사람이 젊을 적부터 의술에 뛰어났는데, 경상도관찰사의 책실(冊室 : 고을 수령의 비서)로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당나귀를 끌고 오던 몰이꾼이 잠시 소변을 보기 위해 당나귀를 유상에게 맡겼는데, 유상은 당나귀를 모는 기술이 없었다. 그러나 장난기가 발동한 유상이 채찍으로 당나귀를 치자, 당나귀는 그대로 유상을 태우고 하루 종일 산속을 내달아 다녔다. 그러다가 저물녘에야 어느 시골마을에 가서 멈추었다. 이에 유상은 그 집에서 묵게 되었는데, 한밤에 주인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그 집에 있는 서가를 뒤져보면서 의서를 보게 되었다.

다음날 유상이 다시 당나귀를 타자, 그 집 주인 아들이 채찍으로 당나귀를 치니, 한낮에 광주의 판교까지 쉬지 않고 내달려갔다. 이때 마침 임금이 마마를 앓고 있어, 10여명의 액예(掖隷 : 궁에서 임금 등의 행차 등을 맡은 대전별감)들이 유상을 찾아오다가 판교에서 마주쳐 함께 궁궐로 들어가게 되었다. 궁궐로 향하던 중에 동현(銅峴)[지금의 서울 명동 부근]에서 마침 마마를 앓다가 나은 아이를 업고 나와 있던 한 노파를 만났다. 이에 어떻게 마마를 고쳤는지를 묻자, 한 스님이 시체탕(柹蒂湯 : 시체 즉 감꼭지와 정향(丁香), 생강 등을 넣어 만든 탕재)을 지어주어 나았다고 했다. 유상은 지난밤에 묵었던 집에서 본 의서에도 시체탕 이야기가 써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궁궐에 들어가 임금에게 시체탕을 다려서 올려 임금의 마마를 낫게 하였다. 이리하여 유상은 당대 최고의 명의(名醫)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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