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C030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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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미옥 |
에~ 에헤~~에~~ 이~~히히~아~~~오~~~산
에~ 에헤~~에~~ 이~~히히~아~~~오~~~산
에~~~ 히히히여~~~~어~ 서른두 명 유대군들[상여꾼들] 내 말 잠깐 들어 주오
먼데 양반들 듣기 좋고 가깐데 양반들 보기나 좋게
곱게 곱게 운상헙시다 그려
관암~~ 보~~살~~~
에~~~ 히히히여~~~~어~ 엊그저께 성튼 몸이 오늘날로 병이 들어
약탕관을 옆에 놓고 인삼녹용을 다렸은들 사교채가 전혀 없고
부르나니 어머니요 찾는 것이 냉수뿐이로구나 그려
관암~~ 보~~살~~~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 나하균[1947년생] 씨가 불러 주는 「상여 소리」의 한 가닥이다. 요즘은 초상이 나면 다들 장례식장으로 가는 시절이고 보니, 어쩌다 마을에 초상이 나도 「상여 소리」를 들을 일은 영 없게 되어 버렸다. 그래도 이곳 구수마을에서는 아직까지도 「상여 소리」를 하는 사람이 남아 있으니, 그가 바로 나하균 씨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그런 거에 소질이 있는 것보다도, 그런 거에 내가 기질을 담고 있는 사람이었어요. 좋아했다 그 말이요. 약간 좋아했었어요. 그래, 생애[상여] 놀리러 댕긴 양반, 그 가서 구경도 허고 그랬죠. 처음 소리는 스물 살 넘겨서, 스무 살 넘어서……[했어요]. 기억은 못 허제라우. 우리 마을부터서 안 했어요. 친구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아, 헐 사람이 없은게. 그때는 헐 사람이 없은게. 그때 한번 했던 것이 그 뒤로 자꾸 허라고 해 가지고, 저는 한 헐라 햇는데 자꾸 허라고 해서 헌 것이 이렇게 되았어요.”
나하균 씨는 정식으로 소리를 배운 적도, 그렇다고 「상여 소리」를 전문적으로 배운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어린 시절부터 상여 나가는 소리가 좋아 따라 부르던 것이 지금의 그를 있게 했다고 한다.
본래 구수마을에서는 김한수 씨라고 「상여 소리」를 전문으로 하던 분이 있었는데, 그 집안은 그의 아버지 대에서부터 「상여 소리」를 전문으로 하던 집안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구수내는 물론이고 인근 마을에 초상이 나면 항상 김한수 씨가 가서 「상여 소리」를 불러 주곤 했는데, 몇 년 전부터 서울에 올라가 자녀들과 함께 살게 되면서, 구수마을에서 「상여 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나하균 씨 한 명뿐이란다.
전문적으로 소리를 배우지 않아 조사자 앞에서 소리 한 토막 드러내 놓는 것이 마냥 쑥스럽기만 한 그였지만, 올[2009년] 9월에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노제(路祭)를 지낼 때 주저하지 않고 「상여 소리」를 해 주었다고 한다. 그것이 비록 미천한 소리일지라도 어머니를 잃고 슬퍼하는 친구를 위한 작은 부조일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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