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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보다 무서운 역병이 돌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C020104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숙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에 사는 전윤오[1938년생] 씨가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들은 역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구수마을 역병 이야기는 정말로 한 마을에 불어 닥친 엄청난 불행이자,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어릴 적에 그는 그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굳게 믿었다고 한다.

“내가 열네댓 살 먹었을 때 들었던 것 같혀. 당시에 여러 곳에서 온 동학군들이 많이 모였던 곳이라서 그랬는가 본디, 그 후로 마을에 역병이 생겨났다고 어른들한테 들었어. 지금 말로 하면 말라리아인디, 한방에서는 학질이라고 하고. 그런디 그때는 ‘최악’이라고 불렀어.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 그러니까 동학란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겨난 역병이라서 더 그랬제. 사람들이 우리 마을을 무서운 마을이라고 했당게. 학질을 퇴치하기 위해 ‘무장당산’이라고 해서 부적을 써 붙였어. 귀신이나 악귀가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해서 부적을 써 갖고 다닌 것이제. 다 미신이제. 모르니까 그랬던 것이제. 지금은 그 깊은 동학 정신을 이어받아야 하는디, 그때는 어디 그랬간디. 시방은 누가 그렇게 말하면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겄소?”

전윤호 씨의 말처럼,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누군가의 몸속에 숨어 있던 역병이 퍼졌을 것이다. 실제로 조선 후기에는 학질과 같은 역병(疫病)[전염병]이 잦았다. 주기적으로 전염병이 유행하고 자연 재해까지 겹쳐 백성을 궁지로 몰아 넣은데다, 탐관오리들의 수탈로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피폐해졌다.

세계사적으로도 17~19세기는 역병이 창궐한 시기였다. 조선 역시 마찬가지여서 동학 농민혁명이 일어났던 시기에는 탐관오리의 부정부패가 극에 달했고, 3~4년에 한번 꼴로 수십만 명의 백성을 굶주리게 하는 가뭄이 닥쳤으며, 학질(瘧疾)ㆍ호열자[윤질(輪疾), 콜레라]ㆍ장티푸스[염병(染病)]ㆍ천연두[두질(痘疾)]와 같은 전염병이 2~3년에 한 번 꼴로 전국을 휩쓸었다.

구수마을에 퍼진 학질은 학질모기가 옮기는 전염병으로, 이 모기는 사람의 피를 빨아 먹으면서 원충을 인체에 침입시켜 심한 오한과 발열을 일으키게 한다. 지금도 해마다 2억에서 3억 명의 사람이 감염되고 2백만 명 이상이 사망하는 위험한 질병이다. ‘하루거리[간일학(間日瘧)]’라고도 불렸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오래전부터 유행했던 질병이다.

학질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사(高麗史)』 의종 6년(1152) 조에 나타나고 있다. 조선시대 의학서인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동의보감(東醫寶鑑)』에도 상세히 언급되어 있고, 1420년(세종 2) 5월에는 대비가 말라리아에 걸려 죽었다는 기록도 전한다.

당시는 역병 이야기만 들어도 벌벌 떠는 시대였는데, 동학농민혁명 무장기포지였던 구수마을에 역병이 나돌았으니, 혁명이라는 난리에 역병이라는 난리가 겹쳐서 그야말로 구수마을은 난리가 난 마을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무서운 마을’이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난리가 시작된 마을에서, 그것도 어수선한 난리의 틈바구니에서 무서운 역병이 돈 것이다. 지금은 그 ‘무서운 마을’이라는 편견을 서서히 지우고, ‘난리가 난 마을’이 아니라 ‘혁명의 불씨를 피워 낸 마을’이 되었다.

[정보제공]

  • •  전윤오(남, 1938년생,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 노인회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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