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A030202 |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미옥 |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에는 90세를 넘어 장수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박사를 많이 배출한 마을로도 유명하다. 그 중에서 손자들까지 합쳐서 박사를 가장 많이 배출한 집이 바로 고기상 씨 집이다. 고기상 씨는 현재[2009년] 이 마을에서 매꼬지댁 김기영 씨 다음으로 장수하고 있는 분이기도 하다.
“자식이 딸 둘에다가, 딸 둘에다가 아들 닛[넷]. 아들이 너이여. [박사는] 우리 큰아들이 받고. 또, 둘째 손자가 받고. 그러고 또, 우리 작은아들이 광주 거시기 살아. 거시기 저, 판사여. 변호사, 판사.”
4남 2녀의 자녀를 둔 고기상 씨는 박사인 큰아들을 비롯해서 최근에는 둘째 손자가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하니,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만하다. 게다가 박사는 아니지만 둘째 아들의 딸이 현재 판사로 있어서 그 또한 집안의 자랑이라고 한다.
고기상 씨는 일곱 살 때인 1921년에 어머니를 잃었다. 그래서인지 집안 어른들이 열다섯 살 때인 1930년에 아직 어린 소년인 자신을 일찍 장가 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부부의 연이 짧았는지, 어린 시절에 만난 부인과는 일찍 사별하고 1959년에 지금의 부인인 김점순 씨를 만나 지금껏 살고 있다.
현재 고기상 씨는 거동이 몹시 힘든 상태이다. 워낙 고령이고 노환이 있다 보니 부인이 옆에서 고기상 씨의 손과 발이 되어 주고 있는 실정이다. 자신의 몸이 이처럼 힘든데도 고기상 씨는 자식 걱정에 연신 눈물을 닦아냈다. 자식이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부모 앞에서는 여전히 어린 아이일 뿐일까? 고기상 씨는 자신만큼 늙어 버린 올해 일흔일곱 살의 큰아들 내외가 병이 들어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소식을 전하며 눈물을 보였다. 자식이 아파 누워 있어도 가 볼 수조차 없이 늙어 버린 자신의 몸이 야속하기만 한 모양이었다.
“큰아들은 공부를 겁나게 힜어. 근디, 그냥 저렇게 아퍼 가지고. 병원, 병원에 가 있은게. 저, 내가 얼른……. [할머니: 저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셔야 헌디.] 큰아들이 효자, 효잔디…….”
큰아들의 병이 마음에 걸려서 끝내 자신이 너무 오래 살아서 그런가보다고 자책을 하는 고기상 씨. 아무리 박사 자식을 많이 두어도 아픈 자식 앞에서는 그것마저도 자랑일 수가 없는 것이 부모의 마음인가 보다.
*고기상 씨는 조사가 진행 중이던 2010년 2월 7일 96세를 일기로 돌아가셨습니다. 소중한 자료를 제공해 주신 어르신께 감사드리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