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A020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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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나경수 |
서울에서 온 버스 한 대가 가평리 가평마을 입구 주차장에 도착한 것은 초여름 햇볕이 따가운 정오 무렵이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40여 명의 도시 사람들이 고색창연 가평마을에서 복분자도 따고 영화 촬영도 하는 독특한 체험을 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신청을 하여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다.
고창군에서 2억 원을 지원받아 2009년 3월에 개관한 고색창연마을체험관에서는 손님을 맞을 준비에 며칠 전부터 바빴다. 고색창연테마마을 운영위원회장과 사무국장을 비롯해서 마을 부녀회 회원들은 청소부터 시작해서 이부자리며, 먹을거리 준비 등 세심한 데까지 신경을 썼다.
도회지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한 가운데서도 다소 긴장감이 돌던 고색창연마을체험관에는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 때문에 왁자지껄해졌다. 이미 고색창연마을체험관 안에는 마을에서 나는 채소며 가까운 방장산에서 채취해 온 나물로 만든 비빔밥이 도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누가 시킬 사이도 없이 앞 다퉈 밥상에 앉았다.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고, 정말 마을에서 난 것들로만 만든 것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많이 시장했던지 일순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사람들은 모두 숟가락질에 열중이었다.
[돌담도 쌓고 영화도 찍고 복분자도 따니 얼마나 좋아]
즐거운 식사시간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도시에서 시골로 왔지만, 공간 이동만 아니라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시간 여행도 하게 되어 있다. 모든 사람들이 돌담 쌓기 체험에 참여하는 것이다. 고색창연테마마을 운영위원장이 도회지 사람들을 모아 놓고 돌담을 쌓는 요령을 설명해 주었다. 귀 기울여 듣고 있던 사람들은 어느 사이 돌담 쌓는 기술자라도 되는 양 양손에 장갑을 끼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돌담은 시골의 정취를 알알이 느끼게 하는 매력을 지녔다. 주로 나이가 많은 분들은 부부간에 참여를 했고, 젊은 부부들은 아이들은 데리고 왔다. 사람들은 한데 어우러져 마치 축제처럼 돌담 쌓기를 즐겼다. 어떤 아이는 돌담에 올려놓은 돌 위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자기의 이름이며 가족의 이름을 적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경기도 안산에서 왔다는 한 아이는 “기말!! 올백”이라고 소망을 적고는 크게 안심이 되었는지 잠시 허리를 펴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돌담 쌓기가 끝나자 잠시 후 영화 촬영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체험관 안에서는 영화 촬영 장비에 대한 간단한 소개에 이어 A팀과 B팀으로 팀을 나누어 시나리오며 역할 등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각 팀은 서로 모여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진지한 준비에 돌입했다. 드디어 체험관 옆에 있는 도동사에서 촬영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장면은 시골로 이사를 온 엄마와 아이가 손잡고 마을을 돌면서 마당에서 놀고 있는 동네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친해지는 장면이다. 두 번째 장면은 선생님과 도동사 마루에 걸터앉은 아이들이 도시와 시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역시 시골에 사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얻는 내용으로 전개되었다. 저녁을 마친 후 시사회를 하면서 잘한 사람을 뽑아 여우주연상과 남우주연상을 시상한다는 말에 참가자들은 더욱 열을 올렸다.
드디어 기다리던 복분자 따는 시간이 돌아왔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람들의 손에는 복분자를 따서 담을 그릇이 쥐어졌다. 딸기는 본래 빨개지면 다 익은 것이지만, 복분자는 붉은 빛이 가시고 까만 색깔로 되어야만 익은 것이다. 자신을 지키려는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쉽지는 않았지만, 이런 것쯤이야 하면서 이미 능란해진 솜씨로 그릇을 채워 가는 사람도 있었다. 따 담는 것보다 따먹는데 열을 올리는 아이도 있고, 손등에 그만 가시가 박혀 엄마를 목 놓아 부르는 아이도 있었다. 개중에 어떤 젊은 부부들은 복분자를 따서 그릇에 담는 것보다는 연신 셔터를 누르면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에 더 바빠 보였다.
모아진 복분자를 가지고 사람들은 고색창연마을체험관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복분자를 이용해서 주스와 와인을 만들 차례다. 체험관에는 이미 도구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사무국장과 마을 사람들이 주스 만드는 방법과 와인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주스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했다. 유리병에 복분자를 넣고 으깨어 두었다가 하루쯤 지난 다음 채로 걸러 내서 물에 타 마시면 된다. 그러나 와인을 만드는 방법은 쉽지 않았다. 먼저 유리병에 복분자와 설탕을 담은 후에 복분자를 손으로 완전히 으깬다. 그런 다음 효소를 넣고 적당량의 생수를 붓는다. 와인을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고 그 적당량이라는 것이 도통 익숙하지 않은 탓에 계속 묻고 또 묻는 사람도 있었다.
[시골의 정을 나누는 체험]
저녁 식사 후에 사람들은 약간의 자유 시간을 즐겼다. 농촌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된 초등학생들은 이미 다 친구가 되어 있었다. 돌담이 유독 아름다워 고색창연마을을 돋보이게 하는 골목길을 누비며 뛰노는 아이들 덕택에 모처럼 마을에 생기가 돌았다. 예전에 마을에 있는 가평초등학교에는 많을 때는 한 학년에 3개 반이 있었지만, 지금은 벽지학교로, 아이들이 많지 않다고 한다.
기다리던 영화 시사회 시간이 왔다. 체험관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상에는 푸짐한 간식이 놓였다. 복분자주스, 복분자한과, 복분자주, 그리고 고창의 특산품인 수박과 땅콩, 거기다가 오늘 캤다는 감자도 보였다. 저녁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도시에서 사먹는 맛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입으로 한 마디씩 거들면서 눈들은 벽 쪽의 작은 스크린으로 자연스럽게 모아졌다. 자기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날 때마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마치 영화배우가 된 것처럼 들떠서 으쓱대는 아이도 있고, 어색한 모습이 보이면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밤이 이슥해지자 체험관에서 잘 사람을 제외하고는 배정된 민박집을 찾았다. 그날 밤, 부녀회장 댁에 머문 사람들은 부녀회장이 내놓은 복분자주와 김부각으로 2차의 분위기를 이어갔다. 그 집만 아니라 밤늦도록 여기저기 민박집에서는 불이 꺼질지 몰랐다.
도시에서 왔던 사람들은 다음날 아침 고색창연마을체험관에서 마을 사람들이 정성껏 마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아쉬운 듯 몇 번씩 뒤를 돌아보면서 고창군의 다른 관광지로 떠났다. 위원장을 비롯해서 마을 사람들은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마을 사람 하나가 버스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자, 자신의 집에 묵었던 사람들이 내년에도 꼭 다시 오마고 하고 떠났다는 말을 했다. 여기저기서 우리 집에서 잤던 사람들도 똑같은 말을 하더라는 말을 모으면서 모두 흐뭇해진 가슴을 앞세워 마을로 발길을 돌렸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