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A020202 |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나경수 |
[까다로워서 웬만하면 실패하는 게 복분자 농사야]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사람들에게 복분자에 대해 물으면, 거의 대부분 돈은 돈인데 가시 돋친 돈이라고 입을 모은다. 복분자 농사가 잘만 되면 다른 작물에 비해 높은 소득이 보장되지만, 농사짓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는 뜻이다. 복분자나무에는 준치 가시보다 더 빼곡하게 가시가 성하다. 그래서 수없이 가시에 찔려야만 비로소 돈이 된단다.
빗물을 머금은 돌담 때문인지 더욱 고즈넉한 마을 골목길을 마을 주민 한 분과 함께 우산을 쓰고 걸으면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복분자를 심었던 밭을 작년에 갈아엎고 대신 뽕나무를 심었다고 이야기한다. 성공한 농부는 물론 실패한 농부에게서도 들을 말은 있다.
복분자나무는 여간 예민해서 밭에 물이 많아도 안 되고 물이 적어서도 안 된단다. 물빠짐이 좋지 않는 점질토에서는 복분자 농사를 짓기가 어려운데, 이는 뿌리가 썩고 가지가 죽기 때문이다. 모래가 많이 섞인 사질토에다가 약간의 경사가 지면 안성맞춤이다. 찰흙 성분이 많은 논에 복분자나무를 심었다가 수확도 못 해 보고 2년 만에 뽕밭으로 바꾸어 버린 농부는 식물이 좋아하는 자연스런 환경을 만들어 주는 데 실패한 것이었다.
[벼농사보다는 복분자 농사가 훨씬 낫지]
고창군이 복분자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약 15년 전의 일이다. 복분자 농사는 본래 고창군 심원면에서 시작했는데, 웰빙 바람을 타고 복분자 수요가 전국적으로 급증하여 고소득 작물로 알려지면서 고창군 농민들이 앞 다투어 복분자를 재배하게 되었다. 고창군을 차로 돌다 보면 진분홍 넝쿨줄기를 가진 복분자밭을 흔히 볼 수 있다.
가평마을에서 복분자 농사를 시작한 것은 대략 7~8년 전부터다. 처음에는 한두 집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15호 이상이 복분자 농사를 짓고 있다. 많이 짓는 사람은 1800평[약 5950㎡] 정도까지 짓는다. 그러나 대개는 400~500평[1322~1652㎡] 정도고, 1000평[약 3306㎡]은 많이 짓는 편에 속한다. 마을이 농촌체험마을로 지정되면서 복분자 수확철에는 도시 사람들이 체험 관광을 오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대도 커 가고 있다.
사흘째 겨울비가 내리는 추적추적한 날씨인데도 마을이 바빠 보였다. 농협에서 마지막 추곡수매를 하는 날이란다. 많은 가정에서 그간 팔 곳이 없어 창고에 쌓아 놓았던 벼를 면소재지에 있는 농업협동조합으로 옮기느라 바빴다. 일반 상인들에게 넘기는 것보다 가마니 당 6000원을 더 받을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도 기쁜 내색은 별로 없어 보였다. 벼농사를 지어 봐야 겨우 본전이라는 말을 마을 사람들의 표정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이장님이 장부를 앞에 놓고 무언가 사무를 보기에 바빠 있고, 몇 분은 누워서 쉬고 있고 또 몇 분은 벽에 등을 기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몇 차례 마을을 방문한 덕에 대개 얼굴을 알고 있는 사이라 오늘 벼 수매에 관해서 몇 마디 인사 겸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리를 잡았다.
복분자는 6월 중하순경에 수확한다. 열매가 검게 익으면 그때부터는 정신없이 바쁘다. 약 보름간에 걸쳐서 익은 복분자를 따서 판다. 복분자 농사를 1000평 정도 짓고 있다는 마을분이 주로 대답을 해 주었다.
복분자는 고소득이 가능하지만 그만큼 위험도 따른다고 한다. 복분자 수확철에 비가 자주 오면 그 해 복분자 농사는 망친 거나 같다. 열매가 쉬 떨어져 버리고 당도도 낮아 제값을 받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복분자는 토양은 물론 기후 변화에 매우 민감한 작물이어서 날씨에 따라 수확량이 매우 크게 달라진다고 한다. 예를 들어서 벼농사의 경우는 대개 200평[약 661㎡]당 잘되면 넉 섬 반, 못 되도 석 섬 반은 수확을 한다. 그러나 복분자는 200평당 잘 되면 800㎏도 따지만, 못되면 300㎏을 건지기도 어렵다고 한다. 풍흉에 따라 3배 가까이 수확량이 차이나는 셈이다.
복분자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그래서 3년을 한 주기로 하여 200평당 연평균 500㎏을 수확하는 것으로 잡는다. 요 몇 년간 농협에서 계속해서 1㎏에 6300원에 사고 있다. 그러나 비가 온 후에 딴 복분자는 5700원이나 6000원을 준다. 또 끝물에 딴 복분자도 값을 덜 쳐준다고 한다. 한 마지기 200평을 기준으로 하여 평균을 내면 복분자로 얻은 소득은 대개 3백만 원 정도다. 여기에 품을 산 인건비를 포함해서 농약, 거름 등 영농비를 합하면 약 90만 원 정도가 든다. 200평에 복분자 농사를 지을 경우, 연평균 2백만 원 이상의 소득이 보장되는 셈이다. 벼농사에 비해 최고 3배 이상의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농사다.
[비싸긴 해도 고창 복분자 하면 다 알아줘]
복분자는 저장성이 약하기 때문에 따자마자 당일 바로 농업협동조합에 가져다 판다. 신림농업협동조합에는 큰 저온 창고가 있지만, 일반 농가에서는 이러한 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농업협동조합은 복분자와 벼에 대해서 반대의 값을 매긴다. 개인이나 상인에게 복분자를 팔면 1㎏에 8000원을 받는다. 농협에서 6300원을 주는 것에 비해 1700원이 비싸다. 그러나 벼의 경우는 반대다. 개인이나 상인에게 벼를 파는 것보다 농협에서는 가마니 당 6000원을 더 주고 산다. 농민들에게 일관된 농업 정책을 적용하고 있지 못한 현실이 농업 소득에 이렇게 직접 반영되고 있다.
그나마 마을 사람들이 긍지를 느끼는 것은 고창 지역에서 수확된 복분자는 다른 지역에 비해 값이 높다는 것이다. 당도도 높고 또 질이 좋다고 알려진 브랜드 가치 때문이라는 자랑이다. 외지 사람들도 고창 복분자를 더 알아주기 때문에 수확한 복분자로 술을 담거나 엑기스를 내서 팔기도 한다. 현재 고창군에서는 복분자를 이용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여 홍보하고 있지만, 이 마을에서는 기껏 복분자주를 담가 두었다가 찾는 사람이 있으면 소량으로 파는 정도이다.
농업기술센터에서는 복분자 재배는 물론 복분자술에 대한 실험 결과를 농민들에게 교육시키고 있다. 복분자 10㎏에 설탕 1㎏, 그리고 소주 23도짜리 1.8ℓ 15병을 쓴다. 항아리에 술을 담그면 추석 무렵에 먹을 수 있게 숙성이 된다. 집에 복분자술을 담아 두었다가 마시기도 하고 선물도 하지만, 또 찾는 사람이 있으면 팔기도 한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복분자술을 파는 것은 주세법에 위반된다고 하고, 그래서 단속이 나올 것이라는 말도 돌고 있단다. 마치 예전에 농주를 담갔다가 세무서 직원에게 들킬까 봐 퇴비더미 속에 술독을 숨기던 일이며, 또 들켜서 벌금을 무는 등 곤욕을 치르던 악몽이 생각나는 듯, 마을 사람들은 이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며 고개를 돌렸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