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A0104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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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해숙 |
가평리 가평마을의 철륭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는 인근에서도 유명한데, 그래서도 마을 사람들은 지금까지 촌제를 모시고 줄다리기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오늘날까지 가평마을 사람들이 촌제를 정성스럽게 모시는 것은 철륭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촌제를 모시기 때문에 마을이 사고 없이 화평하고, 마을 사람들 모두 건강하다고 믿는다. 마을 사람들은 철륭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가 마을과 자신들을 지켜 주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으며, 또한 제를 모시지 않으면 해를 입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듯했다.
[일본군 다리도 부러뜨린 힘센 수호신]
차순임[1927년생] 씨가 들려 준 당산신의 영험담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 마을은 철륭할아버지가 세다. 일본놈이 소갈재를 넘어 다니는디. 말다리가 부러졌대. 왜그랬냐면 철륭제 모시기 위해 임줄을 쳐 놓았는데, 일본놈이 그깟 놈이 뭣이간디 하고 지나가니까 말다리가 부러졌다고 그래. 시집오기 전에 들은 이야기여.”
위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때 실제 일어났다는 일로서, 촌제를 모시는 정월에 마을 어귀에 금줄을 쳐 놓고 외부인들의 출입을 삼가도록 했는데, 말을 타고 가던 일본군이 이를 우습게 알고 말에서 내리지 않고 지나가다가 결국 말다리가 부러졌다는 것이다. 철륭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는 일본군마저 무릎을 꿇게 할 정도로 위력이 큰 마을 수호신인 것이다. 이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풍파도 막아 줄 수 있으리라는 마을 사람들의 믿음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영험담 외에도 마을에서는 아이를 임신한 사람이 촌제를 모시기 위해 만들어 놓은 떡을 먹으면 애가 떨어진다고 전한다. 철륭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를 위해 만든 제물에 함부로 손을 데거나 먹지 않아야 한다는 경고가 섞인 이야기로, 그만큼 정성을 들이고 정결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궂은 사람으로 치부되는 아기를 임신한 사람이 떡을 먹었으니 응당 벌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애가 떨어지게 된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마을 사람들의 입을 통해 구전되면서 그만큼 정성을 다해 제물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평마을의 상징 철륭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
가평마을의 상징인 철륭할아버지과 당산할머니은 모두 팽나무들로 수령이 400~500년은 충분히 되어 보인다. 이 팽나무들은 마을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으며, 이 나무들이 살아 있는 한 마을 역시 지속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곧 팽나무는 마을이면서 마을 사람들의 모습인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 팽나무의 형상을 보면서 한 해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기도 했다. 팽나무 잎이 그 해 봄에 한꺼번에 확 피면 비가 자주 와서 풍년이 들고, 잎이 고루 피지 않고 듬성듬성 피게 되면 비가 오지 않아 흉년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팽나무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한 해 농사가 잘 되도록 팽나무가 한꺼번에 피기를 소원한다.
1980년경까지만 하더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정성스럽게 지은 농사를 망치는 것이 다반사였다. 오로지 하늘을 보면서 원망만 할 뿐 다른 도리가 없었던 사람들이 간절하게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다가 팽나무의 형상으로써 미래를 예지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마을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오래된 관찰을 통해 얻어진 경험적 사실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가평마을에도 수리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예전처럼 팽나무의 형상을 살피는 경우는 적어졌으나, 마을 사람들과 함께해 온 지난 무수한 세월의 흔적을 이런 이야기를 통해 새삼 확인하게 된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