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A010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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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해숙 |
[해마다 거르지 않고 모시는 촌제]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사람들은 매년 음력 정월에 마을 공동으로 ‘촌제’를 모시고 있다. 언제부터 촌제를 모시게 되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없지만,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모시고 있다. 촌제는 철륭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 두 군데에서 모신다.
촌제는 먼저 마을 뒤편 논 가운데에 서 있는 팽나무 앞에서 모시는데, 이 나무를 마을 사람들은 ‘철륭할아버지’라고 부른다. 팽나무는 모두 세 그루로 수령은 대략 400~500년 정도 된다. 그리고 이어서 마을 앞 당산거리에 위치한 팽나무 두 그루 앞에서 제를 모신다. 마을 사람들 ‘당산할머니’라고 부르는 팽나무들의 수령 역시 400~500년은 된다. 당산할머니 바로 앞에는 입석 1기와 제단이 있고, 그 옆으로 석장승이라고도 하는 입석 1기가 있는데, 이 입석에 줄다리기 줄을 감아 놓는다. 원래는 팽나무에 줄을 감았으나 나무의 상태가 좋지 않자 이후부터 입석에 감아 놓는다고 한다.
촌제는 원래 음력 정월 초이튿날이나 초사흗날 혹은 초나흗날 가운데 좋은 날을 택일하고, 섣달에 화주[제물을 장만하여 제사를 지내는 사람] 1명, 축관 1명을 선정하였다. 제를 앞두고 마을에 초상이 나면 상관이 없으나 애를 낳는 것은 철저히 경계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 가운데 산기가 있으면 제를 모시기 전에 마을 밖으로 나가야 한다. 만약 제를 앞두고 마을 사람이 애를 낳게 되면 달을 바꾸어서 2월 초하루에 모신다. 이때는 애를 낳은 집안에서 제물 비용을 물어 주어야 한다.
이렇게 촌제는 2006년까지 정월 초에 모시다가 2007년부터 정월 보름날로 제일[제사날]을 옮겨 모셨다. 정월 보름날 새벽 철륭할아버지 앞에서 철륭제를 지내고, 보름날 오후 2시경에 줄을 만들어 줄다리기를 한 뒤 당산할머니 앞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정월 보름으로 촌제 날짜를 옮긴 뒤로는 정월 초순경 마을 회의를 통해 화주와 축관을 뽑았다. 그러나 금년[2010년]에는 마을 사람들이 서로 협의하여 예전처럼 음력 정월 초사흗날[2010년 2월 16일]에 촌제를 모셨다.
화주와 축관은 상을 당하거나 질병이 있는 사람 그리고 집안에 산고가 있는 사람은 뽑지 않는다. 대신 집안이 깨끗한 사람 가운데 그 해 생기 복덕을 맞추어서 제일 좋은 사람으로 가려 뽑는다. 이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한다. 축관은 화주에 비해 그리 까다롭지 않단다. 이렇게 뽑힌 화주와 축관은 제가 끝날 때까지 궂은 데를 가지 않고, 궂은 음식을 먹지 않는 등 스스로 근신하며 항상 몸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
예전에는 제일이 되면 화주가 개울에서 목욕재계한 뒤 직접 절구질을 하여 떡 등 제수를 만들어 제를 모셨으나 지금은 마을회관에서 화주, 축관 등과 함께 제수를 장만한다. 제수를 장만할 때는 화주, 축관, 이장 외에는 마을 사람들이 함부로 출입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금줄치기에서 줄 감기까지]
얼마 전까지도 제를 모시기 전날이 되면 마을 입구 사방으로 금줄을 쳐서 궂은 사람들이 함부로 마을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차단했으나 지금은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금줄에는 백지를 꽂는다. 이러한 금줄은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외에도 철륭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 화주 집에 쳐 놓는다. 또한 붉은 흙인 황토를 철륭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 앞에 듬성듬성 놓아두고, 화주와 축관 집에도 조금씩 놓아두었다. 지금은 황토는 놓지 않고 금줄만 쳐 놓는데, 예전에 비하면 금기가 많이 약화된 셈이다.
제물은 제를 모시기 2~3일 전 정읍장에 가서 사온다. 대략 20만 원 정도 소요되는 제비[제사 비용]는 가구 수대로 갹출하는데, 올해[2010년]도 호당 만 원씩 걷었다. 마을에 자금이 있다 할지라도 마을 사람들 모두의 정성이므로 지금도 제비는 갹출을 하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당연히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해서 걷는 제비는 대략 60~70만 원이 된다.
정읍장에서 사 온 제수는 곧장 마을회관에 두었다가 제 모시기 전날 저녁 화주가 직접 제물을 장만한다. 철륭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 두 군데 모실 제물을 마련하는데, 철륭은 메ㆍ국ㆍ주과포혜(酒果脯醯)와 간을 하지 않은 백시루 및 삼실과[대추, 사과, 곶감]ㆍ포ㆍ무나물 등을 마련한다. 그리고 당산에는 철륭에 올리는 제물 외에 조기ㆍ돼지고기ㆍ숭어ㆍ김 등을 준비한다. 이러한 제물 외에도 화주가 직접 제주를 빚는다. 미리 장에서 누룩을 사와 용기에 누룩과 밥을 부어 놓으면 발효가 되어 단술이 된다. 이 단술을 제주로 사용하는 것이다.
제일인 보름날 새벽에 화주와 축관은 전날 장만한 제물을 들고 먼저 철륭할아버지 앞에 가서 제를 모신다. 이때 굿치는 사람들이 뒤따른다. 제는 철륭할아버지 앞에 제물을 진설한 뒤에 화주가 먼저 재배하고 이어서 축관이 축문을 읽은 뒤에 단술을 철륭할아버지 근처의 땅에 묻는 것으로 끝난다. 예전에는 축문을 읽은 뒤에 태웠으나 지금은 코팅해서 읽기 때문에 소지를 하지 않는다. 이렇게 철륭제가 끝나면 오후에 줄다리기를 한 뒤에 당산할머니 앞에서 제를 모신다. 이때도 굿치는 사람들이 함께한다. 철륭할아버지 앞에서 올린 제와 마찬가지로 미리 장만해 둔 화주가 제물을 들고 당산할머니 앞의 제단에 진설한 뒤에 재배하고, 이어서 독축한 뒤 당산할머니 옆에 땅을 파서 단술을 묻는다. 단술은 사발만한 크기의 용기에 담은 것이다. 그리고 입석에 줄을 감아 놓는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