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310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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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片在俊 |
영어공식명칭 | Pyeon Jaejun |
이칭/별칭 | 편옥석(片玉石)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 사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병렬 |
출생 시기/일시 | 1913년 - 편재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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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79년 4월 12일|1976년 - 편재준 사망 |
출생지 | 사진포 -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 337 |
성격 | 국악인 |
성별 | 남 |
본관 | 만경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국악인.
[개설]
편재준(片在俊)의 본관은 만경(萬頃), 본명은 편옥석(片玉石)이다. 아버지는 편도일(片道一)이고 어머니는 문남산(文南山)이다. 4남 2녀 중 큰아들로 태어났다. 편재준은 맹인이었으나 퉁소의 대가였다.
[활동 사항]
편재준은 조선 시대 대동미를 운송하던 큰 포구인 사진포[현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 337번지]에서 1913년 태어났다. 사진포는 조기 파시가 벌어지는 곳으로 김토산, 김소희, 김성수 같은 당대의 명인 명창이 많이 태어나고 살았던 곳이다. 편재준은 세 살 때 홍역으로 눈병이 들었는데, 미꾸라지 기름에 소금으로 만든 약을 썼다가 맹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마을에 살던 당골인 김토산(金土山)에게서 처음 피리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전추산[본명 전홍련(全洪連)]과 맹인 음악인 유봉(柳奉)[퉁소의 명인 유동초의 본명]에게 퉁애[전라도 지방에서 시나위용으로 사용되는 퉁소의 하나]를 비롯하여 젓대, 호적, 단소, 가야금, 양금, 피리 등을 배웠다. 또한 박석기가 편재준의 실력을 보고 담양의 지곡리 재실에서 퉁애, 젓대, 단소 등을 가르쳤다고도 한다. 편재준은 거동이 점잖고 진중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악기들을 다루는 솜씨가 비상하였다고 한다. 명인이 된 편재준은 1935년 무렵 박태술(朴泰述)이 고창 성내 삼구회를 계승한 고창 흥덕 아양율계를 조직하자 6·25전쟁 직전까지 그곳에서 활동하였다.
1960년대 후반 편재준은 서울로 올라가 기악 경연대회에 참가하였으나 수상은 못 하였다. 고향으로 돌아와 아편으로 폐인이 되다시피 하다가 1979년 4월 12일 사진포에서 사망한 것으로 호적에 기록되어 있으나 『전라북도 국악실태조사』에는 현 대전광역시에서 말년을 보내다 1976년 사망한 것으로 나와 있다.
편재준은 여러 제자들을 길렀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김철환, 김동표, 김동식 등만이 알려져 있다. 김철환은 1940년 대금 명인으로 편재준 문하에서 1945년까지 대금정악을 배웠으며, 1971년 이래 전주 정악원에서 대금정악 강사를 지냈다. 김철환의 제자인 임길동(林吉東)이 1990년 국가무형문화재 제83-나호 이리향제줄풍류의 대금풍류 조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