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1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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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月山里沙嶝堂山祭 |
영어음역 | Wolsan-ri Sadeung Dangsanje |
영어의미역 | Village-Ritual Ceremony of Sadeung Village, Wolsan-ri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 사등마을 |
집필자 | 송화섭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 사등마을에서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월산리 사등마을 당산제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줄포만[곰소만] 해안 지역의 사등마을에 있는 윗당산[할아버지당산]과 아랫당산[할머니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월산리는 원래 무장군 심원면 해안 지역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사등리와 화산리, 도천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월산리’라 하여 고창군에 편입되었다. 월산리는 마산, 월산, 사등 3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사등마을은 3개 마을 가운데 유일하게 당산제를 모시고 있는데, 마산·월산에 비해 바닷가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다. 사등마을은 모래가 많아 ‘모랫등’, ‘모릿등’이라고 불려 왔으며, 그 앞에는 검당마을이 이웃하고 있다. 검당선사가 검당마을에서 소금 굽는 법을 개발하였다고 한다. 검당마을은 예전에는 100여 가구가 넘게 살만큼 부락이 크고 부유하였으나 지금은 10여 가구만 살고 있다. 현재는 사등마을에 편입되었다. 사등마을 역시 검당처럼 염전으로 인해 부유하여 많을 때는 300여 호가 되었으나 다른 지역의 천일염 개발로 인해 점차 쇠락한 마을이 되었다.
[연원 및 변천]
사등마을의 역사는 분명하지 않으나 사등마을에 속하는 검당마을이 조선 후기 「선운사(仙雲寺) 석불비결(石佛秘訣) 설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본다면 약 300여 년은 된다. 월산리 사등마을 당산제는 조선 후기에 성행하였던 당산제의 유형에 속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사등마을의 당산은 윗당산과 아랫당산이라 하여 그 앞에서 제를 모신다. 윗당산을 ‘할아버지당산’이라고 하는데, 마을 윗쪽인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는 당집이 있었으나 2~30년 전에 당집이 허물어지자 그 곳에 두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아랫당산은 ‘할머니당산’이라고 하는데, 팽나무로 마을 중앙에 위치한 마을 회관 앞 공터에 자리하고 있다. 팽나무는 오래되었음을 알려주듯이 일부분은 고사된 채로 남아 있고, 나머지는 약간 누워진 상태로 서 있다.
[절차]
당산제는 음력 정월 초이튿날 샘제를 모신 뒤에 윗당산과 아랫당산을 모신다. 그러나 지금은 정월 보름날 오전에 모시고 있다. 이는 상수도 개발로 자연스럽게 샘제를 모시지 않게 됨에 따라 당산제 모시는 제일이 바뀐 것으로 생각된다.
샘제를 모신 뒤 당산제를 모실 때의 화주는 섣달 하순경에 마을 회의를 통해 깨끗한 사람을 가려 뽑았다. 마을 회의를 통해 노인들께 당산제를 모실 것인지의 여부를 묻고서 모실 것으로 결정되면 화주를 선출하였다. 지금은 정월 보름에 제를 모시므로 화주는 설을 쇠고 깨끗하고 생기복덕한 사람으로 정한다. 한편 마을이 깨끗하지 못하면 이월 하드렛날 모시기도 했다.
화주는 당산제를 모시기 3일 전부터 근신을 한다. 부부합방을 금하며, 소변을 본 후에는 손을 씻고, 대변을 볼 때는 신을 갈아 신고 보며, 보고 나서는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는 등 철저하였다. 화주는 제를 모신 뒤에도 그 달에는 궂은 데를 가지도 않았다.
제물은 삼실과, 나물, 메, 흰 시루떡, 돼지머리 등을 준비하는데, 윗당산과 아랫당산의 제물을 따로 준비하였다. 열 나흗날은 보름장이라 하여 장이 서는데, 주로 해리장이나 고창장으로 제물을 사러 간다. 제기도 매년 새로 장만한다. 제물을 사러 가면서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 그리고 화주 집에 금줄을 친다. 예전에는 황토도 뿌렸으나 지금은 하지 않는다. 금줄은 제가 끝나면 함께 걷은 후 깨끗한 곳에서 불사른다. 제사 비용은 부락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집집마다 성의껏 5천원에서 2만원에 이르기까지 걷는다. 예전에는 호당으로 걷었다.
먼저 마을 회관 앞에 모여 한참 동안 굿을 치면서 제가 시작함을 알린다. 잠시 후 굿치는 사람들이 앞서 출발하는데, 화주 집에 먼저 들른다. 화주 집 마당에서 굿을 쳐 주면 화주 부인은 마을 사람들이 먹을 음식을 간단하게 차려 놓는다. 굿치는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먹는 동안 화주와 화주 부인은 먼저 할아버지당산으로 향한다.
할아버지 당산 앞에서 제를 모시는데, 제일 먼저 화주가 재배를 하고 소지를 올린다. 이어서 마을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이 재배를 하고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3장 내지 7장을 올린다. 예전에는 축문을 읽었으나 지금은 읽지 않는다. 할아버지당산에서 제를 모실 때 부녀자들은 참여하지 않는다.
제가 끝나면 간단하게 음복하고 할머니당산으로 향한다. 할아버지당산에서처럼 할머니당산 앞에 제물을 차려 놓고 재배하고 소지를 올린다. 그리고 당산나무 바로 밑에 땅을 파서 제물을 조금씩 한지에 싸서 묻는다. 이를 헌식(獻食)이라고 한다. 헌식이 끝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마을 사람들 모두 모여 음복을 하며 당산제를 마무리 한다.
[축문]
당산굿으로 끝내는 동제라서 별도의 축문은 없다.
[현황]
월산리 사등마을 당산제는 샘제와 당산제의 이중 구도로 되어 있다. 샘제는 현재 행해지지 않지만 양산재의 샘물을 끌어오는 민속으로, 물을 날아와 새로운 물을 마을의 공동 우물에 넣는 전통이었다. 이러한 샘제의 전통이 해안 지역에서 전승되는 것과 당산제가 병행되는 것이 해안 지역 동제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