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9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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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永東 |
영어음역 | Gim Yeongd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성미 |
성격 | 정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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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 |
성별 | 남 |
생년 | 1906년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개설]
본관은 광산(光山), 190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김영동은 1921년 정읍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29년부터 북간도, 연길, 용정,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2년 후 출옥하였다. 만주 봉천에서 제철제강업과 자동차연료제작소 사업을 하였으며, 그 운영 이익금은 가난한 동포와 교회, 학교를 위해서 사용하였다. 1945년 조선전화사(朝鮮電化社) 사장을 역임하였다. 1948년 고창군의 국회의원 선거는 갑구와 을구로 나누어져 치러졌는데, 당시 김영동은 무소속으로 고창면·고수면·성송면·무장면·대산면·공음면·상하면이 소속되어 있는 갑구에서 총 유효 투표의 27.3%를 얻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48년 제125차 국회 본회의에서 여수·순천 반란 지구 선무대 구성원을 확정할 때 전라남도 고흥의 유성갑·송진백·오석주, 전라남도 목포·무안의 장홍염·신상학, 전라남도 나주의 이항발·김상호, 전라남도 광양의 김옥주·이종린, 전라남도 광주의 정광호·연병호와 더불어 고창 지역에서는 김교현과 김영동 등이 선정되었다. 1950년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