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8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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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鎔相 |
영어음역 | Yu Yongsa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성두리 상성마을 93[상성길 33-18]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성미 |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사회주의 운동가.
[개설]
1918년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성두리 상성마을 93번지[상성길 33-18]에서 유제필(柳濟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은 유우상(柳祐相)으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월곡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활동사항]
유용상은 명륜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연구소 연구생으로 있던 중 비밀 독서회인 대동사(大同社)를 결성하였다. 1943년에는 동양문화연구소의 연구생이 되었다. 1947년 전국농민회 선전부에서 현약천(玄若天), 인정식(印貞植), 김을한(金乙漢) 등과 『농민신문』을 간행하였다. 이후 고창군 농민조합장으로 추대되었으며, 서울에서는 민족자주연맹 중앙상임위원으로 피선되었다. 1948년 봄, 꾸준히 추진해 왔던 성균관대학 재단 설립 실패로 기성 회장직 등을 사퇴하며 퇴진하였다.
같은 해 8월 유용상은 황해도로 월북하여 해주인민대표자대회에서 전라북도 임실군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북조선 인민공화국 수립을 위한 내각 구성에 참여하였다. 1949년 4월 23일 함경남도 함주군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부임하였고, 1950년 8월에는 진양군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부임하였다. 같은 해 9·28수복 후 지리산으로 입산한 뒤 11월 중순 서북청년결사대에 잡혀 진주경찰서에 수감되었다. 1951년 현지 재판에서 15년형이 구형되어 복역하였고, 이후 풀려 나온 뒤에도 1980년대까지 「사회안전보호법」에 의해 감찰 대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