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8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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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琇炳 |
영어음역 | Gim Subyeong |
이칭/별칭 | 수복(秀福),운재(雲齋),용수(容秀)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성미 |
성격 |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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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
성별 | 남 |
생년 | 1866년 |
몰년 | 1894년 12월 6일 |
본관 | 김해 |
대표경력 | 청년부대 기포장 |
[정의]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개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호는 운재(雲齋), 본명은 용수(容秀)이다. 수병(琇炳)은 자로, 또 다른 자는 수복(秀福)이다. 김해김씨 삼현파의 20세손으로, 아버지는 김봉환(金鳳煥)이다. 186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서 태어났다.
[활동사항]
김수병은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며 의지가 굳어 주변 젊은이들의 우두머리였다고 전한다. 1890년 초 홍낙관(洪樂寬)의 인도로 동학에 들어갔다. 1894년 동학 농민 혁명이 일어나자 고창읍 내 청년들을 규합하여 동학 농민군에 가담시키는 등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후 청년부대 기포장으로 추대된 김수병은 동학 농민군의 선봉에 서서 진군하며 많은 활약을 하였다. 동학 농민 혁명이 실패로 끝나자 지도자격인 그는 토반들의 집성체인 반농민군 지역의 수성군(守城軍)에 의해 체포된 뒤, 읍내 숲정이 거리에서 관솔불에 태워져 처형당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9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