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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772
한자 黃世基
영어음역 Hwang Segi
이칭/별칭 자평(子平),취은(醉隱),해광(海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학자
출신지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
성별
생년 1628년 6월 6일연표보기
몰년 1680년연표보기
본관 평해

[정의]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가계]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자평(子平)이고, 호는 취은(醉隱)·해광(海狂). 평해군 황숙경(黃淑卿)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첨정 황처중(黃處中)이고, 할아버지는 의병장 황이후(黃以厚)이며, 아버지는 황종혁(黃宗爀)이다.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이 증손자이다.

[활동사항]

황세기(黃世基)는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외조부가 글자를 가르쳤는데. 7세 때 시를 지어 집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637년(인조 15)부터 장성의 진사 기진탁(奇塵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46년(인조 24) 외숙 김정현(金精鉉)이 부안군수로 와 있었는데, 여러 백성들이 모인 자리에서 글을 지어 보이니 문장이 뛰어나 이름이 높았다.

1656년(효종 7) 진사 초시에 합격하고, 1657년(효종 8) 고을 원이 석전(釋奠)에 쓰는 희생을 너무 박하게 하자 여러 유생을 이끌고 그를 징벌한 일로 수령에게 기소 당해 순천의 방답도(方踏島)로 피신하였다. 당시 그가 학문에 힘쓰며 섬사람들을 교육하여 존경을 받았다. 1661년(현종 2) 섬에서 돌아왔으나 그 사이 어머니와 큰아들을 잃었으며, 그도 병을 얻어 고생을 많이 했다. 1662년(현종 3) 어머니의 상기(喪期)를 마치고 1663년(현종 4) 별시 초시에 합격하였다. 1672년(현종 13) 외직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송정리에 염요와(厭鬧窩)라는 서재를 짓고 오직 성리학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1659년 기해예송(己亥禮訟) 이후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행적에 적극 찬동하여 사숙(私淑)[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그 사람을 본받아서 도나 학문을 닦음]하였다. 1674년(현종 15) 다시 갑인예송(甲寅禮訟)이 일어나 송시열이 귀향을 가자 세상에 뜻을 잃고 고부의 안현리에 은거하였다. 이곳은 북쪽은 변산, 남쪽은 소요산이 있고, 사진포(沙津浦)와 선운포(仙雲浦)가 좌우로 끼어 있는 명승지였다. 그곳에서 경전과 전적을 연구하면서 후학을 기르고, 벗이 오면 시주(詩酒)로 창화(唱和)하였다. 만년에 소요산 북쪽 비자동(榧子洞)에 서재를 지으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680년(숙종 6) 향년 53세로 사망하였다.

[학문과 사상]

황세기의 학문적인 사상의 일면을 살펴보기 위하여 그가 쓴 과정(科程) 중 중화책(中和策)의 내용을 간추려 보기로 한다. “‘천지 만물은 나의 한 마음에 근본한다. 지성(至誠)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내 마음이 성(誠)을 지극히 하여 중(中)에 이르면 천지가 어찌 자리하지 아니할 것이며, 내 마음의 성을 지극히 하여 화(和)에 이르면 만물이 어찌 자리하지 아니할 것인가. 형이상(形而上)은 하늘이요 형이하(形而下)는 땅이며, 그 사이에 명을 받은 것이 사람이다. 만물에 영장이 되는 것은 사람이다. 그렇다고 천지도 반드시 내 마음이 중에 이름을 기다려 자리하고 만물도 반드시 내 마음이 화에 이름을 기다려 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곧 천지의 마음과 하나이다. 이 하나의 마음이 바로 만물이 화육하는 근원이다. 그러나 정위화육(定位化育)하는 공효는 반드시 중화의 공이다. 간혹 중화의 공에 이르렀으나 정위화육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혹시 그럴 수 있는 예외에 지나지 않으므로 개의할 바가 아니다. 진실로 두려워하고 삼가는 정성을 다하여 그 중화와 위육(位育)의 도를 지극히 하면 음양의 조화에 이를 것이니 일시의 재앙은 근심할 바가 아니다.”

이상과 같이 그는 중용의 핵심에 접근하여 ‘모든 이치는 내 마음에 있다’는 ‘심즉리(心卽理)’의 설에 동의하고 있다. 인간의 마음이 행하는 것에 따라 음양 풍우의 조화도 이루어진다고 하여 요·순의 마음이 중화에 이르렀기 때문에 우순풍조하고 만물이 잘 화육되었다는 것이다. 마음은 곧 덕과 결합하는데 심덕이 중화에 이르지 못하면 재앙이 생길 수 있다. 즉, 오늘날 가뭄이 들어서 전국이 피폐해진 것은 위정자의 심덕이 중화를 얻지 못하였기 때문이니, 위정자는 더욱 심덕을 닦아서 내 한 마음의 성을 다하여야 한다고 하여 왕도론에 접근하고 있다.

그는 분명 당대의 거유였다. 그러나 출세나 명리를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성현의 심오한 학문에 몰두하면서 찾아오는 후진을 교도하였고, 반가운 벗이 이르면 학문과 시주로 마음을 털기도 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취은유고(醉隱遺稿)』 3권 1책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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