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7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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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光迪 |
영어음역 | Yu Gwangjeok |
이칭/별칭 | 여실(汝實),성은(城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노동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기화 |
성격 | 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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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노동리 |
성별 | 남 |
생년 | 1715년 |
몰년 | 1789년 |
본관 | 고흥 |
대표관직 | 찰방 |
[정의]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여실(汝實), 호는 성은(城隱). 할아버지는 유익하(柳翊夏)이고, 아버지는 유해종(柳海宗)이다.
[활동사항]
유광적(柳光迪)은 1715년(숙종 41) 고창읍 양곡리[현 고창읍 노동리]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인 1719년(숙종 45) 아버지를 여의고, 열다섯 살 때인 1729년(영조 5) 어머니까지 잃었다. 고애자로 성장한 그는 어려서부터 근묵(謹默)하며 조용히 덕을 쌓고 학문을 익혔다. 1745년(영조 21)부터 평생을 두고 수백 편의 시를 지었으며, 1781년(정조 5)에 재질과 행의로 천거되었다. 1789년(정조 13) 10월 향년 75세를 일기로 양곡리 향제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촌형 유명적(柳明迪)에게서 글을 배워 가학(家學)을 계승했을 뿐인데도 역천(櫟泉) 송명흠(宋明欽)의 아들 송영리(宋永履)가 그의 수제자였다는 것은 그의 천재성과 학문의 깊이를 입증해 주는 보기가 될 것이다. 송명흠이 그의 학문을 극찬했으며, 호남 실학의 거두 황윤석(黃胤錫)도 만시(輓詩)에서 그의 학덕을 찬양하였다.
[묘소]
묘소는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황산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