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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기재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637
한자 勿己齋集
영어음역 Mulgijaejip
영어의미역 Collected Works of Mulgijae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단행본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 319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주명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시문집
관련인물 강응환[1735~1795]|강대직|송병순|기우만|강천수
저자 강응환
편자 강대직
간행자 강대직
간행연도/일시 1912년연표보기
권수 2권
책수 1책
사용활자 목활자본
가로 19.4㎝
세로 28.5㎝
표제 勿己齋集
소장처(소장자) 강성욱
소장처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 319

[정의]

1912년에 간행된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무신 강응환(姜膺煥)의 시문집.

[개설]

강응환[1735~1795]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에서 출생하였다. 자는 명서(名瑞), 호는 물기재(勿欺齋). 1447년(세종 29) 문과에 급제하여 세조에서 세종 조에 이르기까지의 명신으로 이름난 강희맹(姜希孟)의 11세손이다. 1770년(정조 2) 통예원인의(通禮院引儀)와 사헌부감찰을 역임하고, 1779~1783년까지 경상도 칠원현감을 지냈다. 1783~1794년까지 대구영장, 고령진병마겸절제사, 평안도창성도호부사, 경상좌도수군절도사를 역임하였다.

[편찬/발간 경위]

1912년 5세손 강대직(姜大直)이 편집, 간행하였다.

[서지적 상황]

본서의 저본은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 319번지 강성욱 소장본이다.

[형태]

2권 1책의 목활자본이다. 표제는 ‘물기재집(勿己齋集)’이다. 어미는 상이엽화문어미(上二葉花紋魚尾), 광곽은 사주쌍변(四周雙邊)이다. 반곽 크기는 가로가 16.0㎝, 세로는 23.3㎝이다. 행수는 10행, 한 행의 자수는 22자이다.

[구성/내용]

권두에 송병순(宋秉珣)의 서문, 권말에 기우만(奇宇萬)·강천수(姜天秀) 등의 발문이 있다. 시(詩)·가(歌)·전(箋)·계(啓)·장(狀)·서(書)·기(記)·잡저·부록 등으로 이루어졌다. 부록에 장계와 유서(諭書)가 수록되어 있다.

시는 강응환이 초계군수 등 외직에 재직하면서 친지들과 주고받은 작품들이다. 시의 대부분이 서정시로 이루어져 있다. 강응환은 「무호가(武豪歌)」에서 밭을 가는 일은 모름지기 농부가 할 일이고, 글쓰기는 부유(腐儒)가 할 일이며, 대장부의 할 일은 사(射)를 열심히 하는 것이라 하여 무인(武人)으로서의 긍지를 밝히고 있다. 「계묘춘이친병사칠원현감장(癸卯春以親病辭漆原縣監狀)」에서는 칠원읍이 흉년을 당해 구휼한 과정을 밝히고 있고, 「대명취리시원정장(待命就理時原情狀)」에서는 환곡의 폐단을 상술하고 있다.

장계에는 동래수군절도사로 재직하면서 올린 「계축추래영군정계(癸丑秋萊營軍丁啓)」가 보인다. 강응환은 이 글에서 1793년(정조 17) 당시 동래 지역의 군정(軍丁) 상황 및 폐단을 상세하게 보고하고 있다.

또한 1781년 역마(驛馬)를 환점(換點)했다는 누명을 쓰고 의금부의 심문을 받을 때 올린 원정(原情)과, 2년 후 초계군수로 재직하던 중 이전 근무지인 칠원의 환곡 문제로 의금부의 심문을 받을 때 올린 원정 등이 수록되어 있다.

잡저에서는 전양저·염파 등 13명의 명장을 들어 군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설파하고 있고, 「유각동(諭各洞)」에서는 민생의 폐단을 제거하기 위해 동임이 환곡에서 맡은 역할을 잘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부록에는 그의 치적을 조정에 보고한 순찰사의 장계(狀啓)와 이조의 관문(關文), 조정에서 그에게 보낸 유문(諭文), 칠원현의 황구첨정·백골징포의 폐단에 대해 수록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강응환은 무인이면서도 시문을 즐긴 사람이다. 그가 남긴 「각동전령(各洞傳令)」 등은 그 시대의 백성들에 관한 자세한 정황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무호가」와 「창성감고가(昌城感古歌)」, 「고령진민선정가(高嶺鎭民善政歌)」는 모두 국한문 혼용체로 지은 시가들로, 당시의 시가 문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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