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4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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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良坪部曲 |
영어음역 | Daeryangpyeong-bugok |
영어의미역 | Daeryangpyeong-bugok Administrative District |
이칭/별칭 | 대야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
시대 | 고려/고려 |
집필자 | 박노석 |
[정의]
고려 시대 고창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구역.
[개설]
부곡(部曲)이란 특수 행정구역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주목(驪州牧) 고적(古跡) 등신장조(登神莊條)에 “이제 살펴보건대 신라가 주군현을 설치할 때 그 전정(田丁)이나 호구(戶口)가 현이 될 수 없는 것은 향 또는 부곡으로 두어 그 소재하는 읍에 속하게 하였다.”라고 한 기록으로 미루어 부곡이 삼국 시대부터 존재했다는 사실과, 아울러 인구나 토지가 군이나 현의 규모에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부곡의 수는 조선 시대 들어 점차 줄어들어 1454년(단종 2)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가 편찬되었을 당시 부곡은 68개소, 1530년(중종 25) 『신증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되었을 당시에는 향소부곡을 통틀어 14개소로 줄어, 여말 선초의 사회 변동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소멸되었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 고창현 고적조에 "대량평부곡은 현 남쪽 15리에 있다[大良坪部曲在縣南十五里]."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세종실록지리지』, 『여지도서(輿地圖書)』 , 『대동지지(大東地志)』, 『고창현읍지(高敞縣邑誌)』 등에 관련 기록이 있다.
[내용]
관련 기록을 살펴보면 대량평부곡은 고창현에서 남쪽으로 15리[약 6㎞] 떨어진 곳에 있었다. 『고창현읍지』 고적조에는 “대량평부곡은 현의 남쪽 15리에 있다. 지금 살펴보건대 고사동에 폐현의 옛 터가 있는데 이곳이 옛날의 대량평이지 않을까 한다.”라고 기록하여 이곳을 고사동으로 추정하였는데, 고사동은 지금의 고창읍 내동리 고사마을로 고창읍성에서 직선 거리로 약 3㎞ 떨어져 있어 15리라는 거리와는 차이가 많이 난다. 대량과 발음이 비슷한 곳으로 고창읍 노동리 대양마을이 있는데 이곳도 거리상으로 맞지 않는다.
한편, 고창군 고수면 부곡리(芙谷里) 부곡마을은 명칭이나 거리상으로 대량평부곡이 있던 곳이라 하기에 적절한 지역이다. 부곡리는 조선 말기 고창군 수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지형이 가마처럼 생겼으므로 가마골 또는 부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암리·연동·신평리·증산리, 고사면 신곡리 일부, 산내면 점촌 일부를 병합하여 부곡리라 하고 고수면에 편입하였다.
하지만 이 같은 변천 과정은 『고창현읍지』의 기록과 일치하지 않아 현재로서는 대량평부곡이 정확히 어느 곳에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대량평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오씨(吳氏)·박씨(朴氏)·김씨(金氏)·윤씨(尹氏)·송씨(宋氏)로 기록되어 있으며, 『증보문헌비고』에는 박씨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