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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805
한자 高龍鎭
영어음역 Go Yongjin
이칭/별칭 고운서(高雲瑞),송재(松齋)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정성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독립운동가
출신지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50년 10월 1일연표보기
몰년 1922년 2월 26일연표보기
본관 장흥

[정의]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개설]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호는 송재(松齋), 이명(異名)은 고운서(高雲瑞)이다. 1850년 10월 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서 고시필(高時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활동사항]

고용진은 1878년 아우 고석진(高石鎭), 고예진(高禮鎭)과 함께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 들어갔다. 1906년 4월 전라북도 정읍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최익현이 강회(講會)를 가장하고 의병을 일으키자, 강종회(姜鍾會) 등 포수 30여 명을 이끌고 의병으로 들어갔다. 1913년 9월 을사 의병 운동 때 최익현의 의진에서 활약했던 임병찬(林炳瓚)이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를 조직하고 각 도에 도순무총장(道巡撫總將)과 각 군에는 군수, 면에는 향장(鄕長)을 두고 국권 반환 요구를 할 때 참가하여 활약하였다.

1914년 2월 칙령으로 종2품의 가선대부 독립의군부 회계총관(嘉善大夫獨立義軍府會計總管)으로 임명되어 국권 회복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파리장서(巴里長書)의 서명 운동도 전개하였다. 동생들인 고예진, 고광순(高光洵), 고광채(高光彩), 고석진 등도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조국 광복에 공헌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3년 건국포장 애국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이기화 편저, 『고창의 맥』(고창문화원, 1991)
  •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 나라사랑 광장(http://narasarang.mpv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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