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영조 연간에 무장현[현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서 간행된 읍지. 기록에 의하면 『무장읍지(茂長邑誌)』는 1544년(중종 39) 무장현감 유희춘(柳希春)이 최초로 간행했다고 하나 판종은 알 수 없다. 이후 1636년(인조 14)에 심제(沈𪗆)가 두 번째 『무장읍지』를 간행했으나 역시 판종을 알 수 없다. 세 번째로 1741년(영조 17)에 역시 무장현감 정권(鄭權)이...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상금리와 성송면 무송리,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 생촌리와 경계를 이루는 백제 시대 석성. 고창군 대산면과 성송면 일원은 백제 시대 송미지현[현 성송면, 대산면, 무장면 일원]에 속하다가 무송현으로 개칭되었고, 1417년(태종 17) 무송현이 장사현과 병합하면서 무장현이 되었다. 고산성에 대한 문헌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무장 고적조에 “...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같은 성과 같은 본관을 가지고 살아 온 성씨. 『택리지(擇里志)』를 쓴 이중환(李重煥)은 한국 성씨의 보급 시기를 고려 전기로 잡고 있다. 후삼국이 쇠퇴하면서 일찍부터 지방에 내려가 정착하기 시작한 중앙 귀족의 후예와 재래의 토착 촌주층(村主層)이 중심이 된 호족(豪族)들은 실질적으로 군현(郡縣)을 장악하고 스스로 관반(官班)을 형성하여 지역을 통치하였다....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동성동본의 사람들로 형성된 촌락. 집성촌은 성(姓)과 본(本)이 같은 부계의 혈족들이 대대로 모여 사는 촌락을 의미한다. 마을을 주도하는 성씨가 상대적으로 결속하면서 토성과 세거성씨가 중심이 된 동족 마을이 발달하게 되었다. 1.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수록된 성씨 『세종실록지리지』에 실린 고창 지역의 세거성씨를 보면 고창현의 토성은 오(吳),...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원촌리에 있는 각석. 첨금정(添襟亭)은 원촌리의 논 가운데에 있는 각석으로 고인돌로 축조된 커다란 덮개돌에 조선시대 각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본래는 길 옆에 자리하였으나 주변이 모두 경작지로 개간되면서 논 가운데에 위치하게 되었다. 『무장읍지(茂長邑誌)』 및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 따르면 무장현 동쪽 5리에 첨금처(添襟處) 혹은 첨금...
전라북도 고창군의 지리·역사·사회·전승 등에 관한 기록. 향토지는 고문헌과 현대 문헌으로 구분하여 정리할 수 있다. 고문헌은 향교지·서원지(書院誌)·현지(縣誌)·사지(祠誌)·사지(寺誌)·읍지(邑誌)·행장(行狀)·금안(襟案) 등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현대 문헌은 정기·부정기 정기 간행물과 마을지·조사 보고서·발굴 보고서·지표 조사 보고서·전집 등을 들 수 있다. 고창 지역에서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