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1869
한자 九岩里馬來堂山祭
영어음역 Guam-ri Marae Dangsanje
영어의미역 Village-Ritual Ceremony of Marae Village, Guam-ri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
집필자 송화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마을신앙|마을 제사
의례시기/일시 음력 1월 말일|음력 2월 1일
의례장소 마을 앞
신당/신체 당산나무[팽나무]|당산[고인돌]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의 마을 수호와 풍농을 기원하며 음력 1월 말일과 2월 1일에 지내는 동제.

[연원 및 변천]

구암리 마래마을 당산제는 매년 음력 이월 초하루날에 거행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마래마을공음면에 속하고, 마을이 전라남도 영광군과 경계하고 있으나, 일제 강점기 때 신작로가 개설되면서 마래마을의 행정구역은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과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읍으로 나뉘어졌다. 그래서 처음에는 전라남도 지역에 위치한 마을에서 동제를 지냈으나, 신작로가 개설된 이후에는 전라북도 지역의 할머니 당산 주변에서 당산제를 지내오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마래마을에는 마을을 중심으로 12당산이 위치하고 있다. 12당산은 팽나무인 할머니 당산, 할아버지 당산을 포함하여 10기의 고인돌이다. 할머니 당산은 마래마을의 뒷동산 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할머니 당산 오른쪽으로 300m를 가면 할아버지 당산이 영광군 홍농면에 있다. 그리고 남방식 고인돌을 당산으로 섬기고 있는데, 큰샘 당산, 말바위 당산과 줄감는 당산은 현존하나 상바위 당산과 3개 정도의 고인돌 당산이 땅속에 파 묻혔다. 그리고 마을에 들어오고 나가는 입구에 들당산과 날당산이 있다. 할머니 당산과 할아버지 당산 등의 12당산이 마을 주변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마을에 신작로가 개설되어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로 나뉘기 전에 말바위 앞에 위치한 상바위에 제물을 차려놓고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상바위가 매몰되자 현재의 할머니 당산에 와서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할머니 당산은 마래마을 뒷동산 덕림산 자락의 야트막한 곳에 한다. 할아버지 당산은 할머니 당산 오른쪽 방향 300m거리의 영광군 홍농읍에 위치한다. 팽나무 사이에 대나무가 숲을 이뤄 매우 성스러운 곳으로 보이는데, 이곳에 금줄이 쳐지면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다.

할머니 당산은 마래마을의 천룡당과 같은 기능을 한다. 할머니 당산 아래에 위치하는 대여섯집에서 장독대에 철륭[천룡]을 모시는 집이 있는데, 철륭[천룡]은 오가리 옹기에 쌀을 담아놓고 볏짚으로 주저리를 씌워 놓는 형식이다.

[절차]

마래마을 당산제는 정월 그믐에 당산제를 지내고 이월 초하루에 줄다리기를 하는 이중 구조의 당산제이다. 마래마을 사람들은 정월 그믐날 당산과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에 황토흙과 금줄을 쳐서 부정을 막고 마을을 신성한 공간으로 조성한다. 금줄은 12당산에 모두 치는 것인데, 요즘에는 할머니 당산, 할아버지 당산과 말바위 당산에 금줄을 치고 있다.

당산제의 제물과 제의 대상은 할머니 당산이다. 정월 그믐날 오후에 동내 청년들은 할머니 당산을 깨끗하게 청소를 한 뒤에 당산 주위를 방형으로 금줄을 친다. 금줄을 친 뒤에 마을주민들은 ‘당산할머니 옷입히기’를 한다. 고창장에 나가서 가로 세로 1m 정도[3자×3자] 크기로 하얀 광목천을 구입하여 할머니 옷을 만드는데, 옷은 치마 형태로 광목천을 네모지게 오려놓고 헝겊 끈을 당산나무 뒤로 묵는 형식으로 ‘옷입히기’를 한다. 말은 옷입히기라 하지만 다른 신상의 옷입히기와 다르게 치마를 두르는 형식의 옷입히기를 하고 있다. 옷입히기를 앞치마 두르는 형식으로 한다.

저녁 때가 되면 제물을 준비할 화주를 선출하여 할머니 당산 근처에 움막을 설치하고 당산제물을 만들기 시작한다. 움막에서 옹기 그릇에 메밥을 짓고 제물을 준비하는데 부정타지 않도록 조심을 한다. 메밥을 짓는 옹기는 매년 새 옹기를 구입하여 사용하고 폐기하였으며, 제주로 쓰는 ‘조레술’은 술을 잘 담그는 집에 부탁하여 제주를 준비하도록 했으며, 제주를 빚는 집에서는 대문에 금줄을 치고 금기를 엄격하게 했다. 제물은 삼실과, 북어, 김, 메밥을 차린다. 예전에는 화주가 제물 준비를 전담하였으나 지금은 화주를 맡은 사람들이 없어서 마을 청년들이 공동으로 준비하면서 제물이 간소화되어 나물도 올리지 않는다.

마을 당산제는 마을 당산신의 신위를 12신으로 인식하고, 메밥과 제물을 12인분을 준비하여 차려놓는다. 마을 당산이 12당산이기에 각 당산신을 할머니 당산 앞에 모셔놓고 12그릇의 메밥과 제물, 제주를 진설하여 제사를 지낸다. 예전에는 당산 할머니신과 당산 할아버지신을 할머니 당산 앞에서 지내고, 나머지 당산은 말바위당산 앞에서 지냈다. 지금은 12당산신을 합위하여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마래마을의 당산제비는 ‘명화전’으로 마련한다. 명화전은 남자들에게 부과한 당산제비이고, 부녀자들은 대상이 아니었다. 명화전은 남자들만 할당하여 걷는 돈이라 하여 ‘불알값’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는데, 한가족에서도 남자 수만큼 명화전을 냈으며, 딸만 있는 집에서는 당산제비를 일체 부담하지 않았다. 그러나 10여 년 전부터 이농현상과 마을에 노인들이 거주하는 세대가 늘어나면서 한 집안의 한사람에게 1만원, 2명이면 1만 5천 원을 걷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와 관련한 풍속 가운데 이월 초하루 당산제를 거행하는 날 줄감기를 마치고 나면, 농악대가 득남을 한 집에 찾아가서 축원굿을 쳐주고 아들을 낳은 집주인은 술과 음식으로 득남턱을 내기도 했다. 득남턱은 불알턱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날 밤에 마을가운데 부자집에서는 ‘소머리술’이라 하여 술을 내놓기도 했다. 한마디로 불알턱을 내는 것과 같다.

예전에 마래마을 당산제가 융성할 시기에는 정월 그믐날에 용줄을 비고 이월 초하룻날 오전에 오방돌기를 하고 오후에 줄다리기를 하여 해질녁에 줄감기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간소화하여 이월 초하룻날에 모든 것을 시작하고 마친다. 이월 초하룻날 아침에 마을 주민들은 볏짚다발을 손에 들고 마을회관 앞에 모인다. 마을회관과 마을 입구 사이에서 줄을 꼬기 시작하는데, 줄은 외줄이다. 줄이 용의 형상이라서 ‘용줄’이라고 부른다. 줄은 9접으로 만들어지는데, 예전에는 27접 크기로 줄을 만들고 지금보다 배이상 길게 꼬았다고 한다.

줄의 제작이 끝나면 마을주민들이 줄을 어깨에 메고 오방돌기를 한다. 오방돌기를 한후에 말바위 당산에 와서 한 바퀴 돌고나서[진쌓기 놀이] 줄다리기를 한다. 줄다리기는 큰 도로가에서 하는데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 편을 짠다. 여자편에는 15살 아래 아이들은 가담하여 당기는데, 줄다리기가 시작하면 할머니들이 회초리로 남자들을 후려치며 방해를 하여 항상 여자편이 이겼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도 여자편이 이여야 풍년이 든다고 하여 3판양승제의 줄다리기는 항상 여자편이 이긴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주민들은 넓은 밭들에서 진쌓기 놀이를 즐긴다. 줄머리를 든 사람이 농악대를 따라 나선형으로 줄감기를 하고 다시 줄푸는 놀이를 즐긴다. 이러한 놀이과정에서 줄의 꼬리를 잡은 사람이 역방향으로 돌면서 줄달음치기를 하여 난장판을 만드는 일이 자주 일으킨다. 이러한 진쌓기 놀이는 용의 오신놀이로서 마치 용이 용트림하는 위용을 보여주는 놀이형태를 보여준다.

용줄은 줄감는 당산 옆에 서있는 입석에 감는다. 줄감기는 줄의 꼬리부터 감아서 줄머리를 입석상단에 감아얹히는 방식으로 감아놓는 줄처리 방식을 취한다. 줄감기가 끝나면 모든 당산제를 마친다. 줄감기를 마친 저녁 무렵에는 원하는 집에 찾아가 축원굿을 치고 밤늦게까지 놀았다.

예전에는 마래마을 당산제를 보고 참가하기 위하여 이웃 친척들이 찾아와 2~3일씩 묵고 가는 바람에 손님치레하느라 정작 안주인은 굿구경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당산제를 크게 지낼 때에는 마래마을에 천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몰려와서 줄다리기를 즐겼다. 마을에서는 상쇠와 설장고를 잘치는 굿쟁이 5~6명 정도를 일당을 주고 데려와 굿판을 즐겼다고 한다. 굿쟁이들은 주로 당골판에서 주악을 담당하는 잽이들인데 마을 당산제에 불려와 마을주민들과 함께 판굿을 즐기고 놀았다. 마을농악대는 일당을 주고 초청한 굿쟁이[상쇠, 설장고]와 호흡을 맞추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농악을 치는 사람이 없어서 마을회관에 농악기가 보관되어 있을 뿐이다.

[현황]

마을 주민들은 기존에 남방식 고인돌 5~6기를 당산으로 섬겼으나, 현재는 밭주인들이 포크레인으로 구덩이를 파묻어 당산 고인돌이 사라진 상태다. 2011년 현재는 3기의 고인돌을 당산으로 섬기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큰샘을 매우 영험하다고 믿고 큰샘을 당산으로 섬기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사람이 우물에 빠져도 다치거나 죽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당산굿을 칠 때에는 반드시 큰샘에 금줄을 두르고 샘굿을 친다.

구암리 마래마을 당산제는 앞치마 같은 광목천을 당산할머니에 감아놓는 놓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곳에서는 줄다리기를 마친 후에 볏짚줄을 감아놓는 형식을 ‘당산 할머니 옷입히기’라고 하는데, 마래마을에서는 실제 광목천을 앞치마 형태로 만들어 ‘옷입히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고인돌을 12당산으로 섬기는 관행도 다른 지방에서 보기 어려운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오고 있는 당산제가 앞으로도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다.

[참고문헌]
  • 인터뷰(구암리 마래마을 주민 최명진, 남, 76세, 2011. 3. 5)
  • 인터뷰(구암리 마래마을 주민 최대석, 남, 76세, 2011. 3. 5)
  • 인터뷰(구암리 마래마을 주민 박균태, 남, 73세, 2011. 3. 5)
  • 인터뷰(구암리 마래마을 주민 채수연, 남, 74세, 2011. 3. 5)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