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1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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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廣寺融妙大師浮屠 |
영어공식명칭 | Stupa of Buddist Mont Yungmyo from Songgwangsa Temple |
영어음역 | Stupa of Buddist Mont Yungmyo from Songgwangsa Temple |
영어공식명칭 | Stupa of Buddist Mont Yungmyo from Songgwangsa Temple |
이칭/별칭 | 송광사 융묘대사탑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신평리 1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모창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순천 송광사에 있는 조선 후기 세워진 고승 융묘대사의 승탑.
[승탑 주인공]
융묘대사(融妙大師)는 부휴(浮休) 선수(善修)[1543~1615]의 제자로 1621년(광해군 13)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기」와 1628년(인조 6) 소조사천왕상 중수 시 증명법사로 기록되어 있어 17세기 초반에 순천 송광사에서 활동했던 고승으로 생각된다.
[위치]
순천 송광사 경내에 있는 송광사성보박물관 우측 산길을 따라 약 250m 정도 오르면 감로암이 나온다. 감로암에서 다시 북쪽 능선을 따라오면 중턱에 송광사 융묘대사 부도가 있다.
[형태]
송광사 융묘대사 부도는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부는 탑신부에 비해 낮게 마련하였다. 지대석(址臺石)은 사각형으로 간략하게 치석(治石)된 관석형 석재를 사용하였다. 지대석 위에 곧바로 하대석이 올려졌는데, 기단부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보아 기단부의 중대석과 하대석 아래에 결구(結構)되었던 대석이 결실(缺失)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대석은 평면이 원형으로 표면에 단판과 복판이 혼합된 11엽(葉)의 복련문(覆蓮文)을 장식하였다. 하대석에 표현된 연화문(蓮花紋)들은 크기도 달라 정연하지 못한 측면을 보인다. 하대석 상부는 원형으로 약간 돌출시켜 괴임대를 마련하였다. 상대석(上臺石)도 평면이 원형으로 표면에 단판 8엽의 앙련문(仰蓮文)을 장식하였다. 그런데 하대석은 연화문 내의 중앙에 세로로 돋을대를 표현하여 기본적으로는 팔각형이 유지되도록 했다. 상대석 상면은 수평으로 치석하였으며, 안쪽에 낮게 팔각의 괴임대를 마련하여 탑신석이 견고하게 고정되도록 했다.
탑신석은 팔각 석주형으로 앞면에 음각으로 ‘융묘대사탑(融妙大師塔)’이라 새겨 이 부도의 주인공이 융묘대사임을 알 수 있다.
옥개석은 하부에 서까래와 부연을 비롯하여 추녀와 사래가 다소 형식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처마부를 전체적으로 살짝 치켜 올려 경직된 인상보다 경쾌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 처마면은 다소 높아 둔중하고, 낙수면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직선형으로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낙수면에는 형식화가 진전된 기왓등과 기왓골이 표현되어 있다. 또한, 각 면이 만나는 곳에 마루가 묘사되어 있고 돋을대를 낮게 마련하여 사실성이 떨어지고 있다. 상륜부는 1석으로 치석되어 있는데, 하부에는 복련문이 새겨진 보주 받침대를 놓고, 4엽의 연화문이 새겨진 연봉형(蓮峯形) 보주(寶珠)를 올려 마무리하였다.
[현황]
송광사 융묘대사 부도는 도굴꾼들에 의하여 도괴(倒壞)되기는 하였지만, 부분적으로 파손된 것을 제외하고는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특징]
송광사 융묘대사 부도는 전체적인 형태에서 송광사에 전해지는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順天 松廣寺十六祖師)의 승탑을 모방하였다. 특히 방형의 기단부와 전각형의 옥개석을 비롯한 상륜부에서 그러한 측면이 강하게 반영되었다. 그러나 세부적인 치석과 결구수법에서 형식화된 경향이 강하게 진전되어 있고, 정연하지 못한 치석 수법을 보여 다른 16국사의 승탑에 비해 시대의 하강을 보여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송광사 융묘대사 부도는 융묘대사가 활동한 시기인 17세기 전반에 순천 송광사 등지에 전해지는 고려시대 승탑을 모방하여 건립된 승탑으로, 건립 시기, 탑의 주인공, 승탑의 변용 등을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전라남도 지역 승탑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