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10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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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巫俗信仰 |
영어공식명칭 | Shamanism |
영어의미역 | Shamanism |
영어공식명칭 | Shamanism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서해숙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사제자인 단골이나 무당이 주축이 되어 민간에서 전승하고 있는 신앙.
[개설]
순천 지역을 비롯한 전라남도의 무속은 세습을 이루는 사제무가(巫歌)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전라남도에서 세습무에 대한 일반적인 호칭은 단골이라 부른다. 단골의 성무과정에는 강신 체험과 무병의 현상이 없다. 전적으로 가계에 따라 단골 신분이 계승되고 학습으로 무업이 전승되는 것이다.
순천 지역은 조선시대 순천도호부가 설치되었던 큰 고을이었고, 지금도 전라남도 동부 지방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순천 지역에는 예부터 세습무들의 활동이 활발했다. 1930년도의 보고에 의하면, 순천에서는 인구 10만 명당 80~100명의 무당이 활동했다고 한다. 당시 순천은 전라남도의 진도군·해남군·보성군·고흥군 등에 이어 무당의 밀도가 높은 지역이었다. 더 이상의 기록이 없어 자세한 사정을 확인하기 어렵지만, 순천 지역은 전라남도의 다른 지역들과 비교해 볼 때 무속 활동이 활발했던 곳으로 분류할 수 있다. 순천 지역에서는 호남 지역 세습무들의 활동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최근 들어 강신무들의 활동이 늘어나는 추세다. 세습무가 점차 줄어든 데 따른 공백을 강신무들이 메꾸어 굿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고, 수요자들도 신들림이나 공수 등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단골이 우세했던 과거에 점쟁이는 점을 치는 일이나 간단한 비손밖에는 하지 못했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과거에 단골이 했던 여러 가지 무의를 맡아서 하는 예를 흔히 볼 수 있다.
[단골판]
단골판은 일정 지역에서 특정 단골만이 무의할 수 있다는 단골 사회의 내규이다. 단골판 내에서 신도들은 단골에게 종교적으로 의존하고 단골은 신도들로부터 경제적 부양을 받았다. 단골은 자신의 구역에서 사제자 역할을 하고, 봄·가을에 ‘단골댁[신도]’으로부터 현물보수를 받았다. 이러한 단골판 제도는 세습무들의 활동에 중요한 사회적 배경이 되었다. 그리고 씻김굿과 같은 무속의례가 폭넓게 수용되는 사회적 지지 기반이 되었으며 단골과 주민들의 관계를 규정하는 조건이 되었다. 순천 지역에는 1970년대 초까지 단골판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조사된다. 그리고 1932년에 나온 『조선의 무격(朝鮮の巫覡)』에 순천의 단골제에 대한 간략한 기록과 1950~1960년대 순천 지역의 단골판 현지 조사 내용을 볼 때, 단골판이 운영될 때에는 각 단골이 관장하는 자기 고유의 판이 있었다. 단골판에서는 원칙적으로 다른 단골이 들어가서 무의할 수 없었으며, 만약 규칙을 어기면 단골 사회 안에서 각종 제재를 받았다. 단골판은 부동산처럼 소유권이 인정되었으며, 다른 단골에게 팔아넘길 수도 있었다.
한편 단골판의 관행은 시기에 따라 변화되었다. 1930년 당시 정기적으로 보수를 받던 ‘정계제(正季制)’에서 의례 수행 시에만 보수를 받는 ‘임시제(臨時制)’로의 변화가 그것이다. 이런 변화는 무속의례를 의뢰하지 않거나 그 빈도수가 적은 사람들에게는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시킨 일도 없이 단골에게 급여를 주는 것보다는 일이 있을 때 수고비를 주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여겼다. 1930년 무렵에 이미 단골과 주민들 사이에 존재하던 ‘신앙공동체’의 관념이 약화하고 단골의 역할을 일 중심의 일회적 관계로 제한하는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이후 순천 지역의 단골판은 1970년대에 들어서면 거의 자취를 감춘다. 그러나 전통적인 관념을 가진 노인들의 경우 지금도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관행을 염두에 두고 단골을 대하기도 한다.
[순천 지역의 굿 종류]
순천 지역에서 전승되는 굿은 상황이나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로 세분된다. 먼저 굿의 종류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안택(安宅)은 액을 막고 집안에 재수 있기를 빌기 위해 하는 굿으로, 대개 정월에 하며 일 년의 운수를 빈다. 독경과 축원 정도로 이루어지는 소규모의 굿이다. 배연신[뱃고사]은 배의 안전과 풍어를 빌기 위해 하는 굿으로, 바닷가를 끼고 있는 순천시 별량면과 해룡면 일대에서 주로 전승되었다. 뱃고사가 선주의 개인적인 굿이라면 풍어굿은 마을굿 차원에서 하는 굿이다. 풍어굿은 부정치기 → 당산굿 → 용왕굿 → 도깨비굿 → 거리굿 순으로 이루어진다. 지양풀이는 산모가 난산일 때 삼신할머니에게 아이의 순산을 축원하는 굿이다. 성주굿은 집을 새로 짓거나 이사를 했을 때 성주신에게 집안의 번영과 가족들의 건강을 축원하기 위해 하는 굿으로, 굿의 순서는 부정치기 → 조왕 → 안당 → 손굿 → 제석 → 거리굿 순으로 이루어진다.
씻김굿은 죽은 영혼을 위로하고 달래어 저승으로 천도하는 굿으로, 목적에 따라 세분된다.
① 진굿[곽머리씻김굿] : 초상이 났을 때 상가에서 하는 굿
② 날받이굿 : 좋은 날을 받아 하는 씻김굿으로, 일반적으로 집안에 우환이 있을 때 문복을 하고 점쟁이의 지시로 택일하여 굿
③ 혼건지굿 :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혼을 건져 씻겨주는 굿
④ 탈복굿 : 소상이나 대상을 마치고 상복을 벗을 때 하는 굿
⑤ 49재 씻김굿 : 49재 때 하는 굿
⑥ 예식굿[저승혼사굿] : 미혼으로 죽은 처녀, 총각을 결혼시켜주는 굿
⑦ 초분 본장 씻김굿 : 초분을 했다가 본장으로 이장할 때 하는 굿
삼설양굿은 아픈 환자가 있을 때나 규모가 큰 씻김굿[날받이굿]에서 치병을 목적으로 하는 굿으로, 절차는 일반 씻김굿 뒷부분에 삼설양굿이 추가되는 형식이다.
내림굿[신굿]은 신들린 사람의 입무를 위해 하는 굿이다. 안택, 배연신, 풍어굿은 집안과 가족, 생업, 마을 등에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하는 경사굿이다. 지양풀이, 성주굿, 씻김굿, 삼설양굿은 질병이나 죽음, 우환 등이 있을 때 그것을 치유하고 달래기 위해서 하는 궂은 굿이다. 내림굿은 강신무의 입무를 돕기 위해 하는 굿이다. 내림굿 가운데 씻김굿이 가장 대표적이고 큰굿이다. 이는 호남지방의 일반적인 사실이기도 하다. 씻김굿은 대개 낮에 혼을 건지거나 맞이한 다음, 초저녁부터 본격적인 굿거리를 시작하여 밤새워 하는 식으로 연행된다. 여러 명의 무녀와 악사가 참여하여 굿을 하게 되고, 그 규모만큼의 경비와 준비가 뒤따르게 된다. 요즘 들어 진굿이나 초분 본장 때의 씻김굿 등은 거의 하지 않지만, 지금도 여전히 씻김굿을 큰 굿으로 인식하고 있다.
[순천 씻김굿의 특징]
순천 씻김굿은 일반의 면모를 갖고 있으면서 한편으로 지역적으로 다른 점을 보여주는데, 구체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무목과 굿청 차림이 호남의 다른 곳에 비해 화려하다. 둘째, 순천의 무가는 다른 곳에 비해 서사적 짜임새가 있다. 셋째, 무극(巫劇)이 발달해 있는데, 순천 지역에는 호남지방의 유일한 무극인 「삼설양굿」이 전승되고 있다. 이처럼 순천 지역은 경상도에 가깝다는 지리적 조건이 작용했기 때문에 경상도의 굿과 유사한 점이 찾아진다. 곧 경상남도와 접경지라는 조건이 잦은 문화적 교류를 갖게 했고, 그것이 굿에 반영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굿청과 무복 등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순천 지역은 예부터 큰 고을이었으므로 물산이 집결하는 곳이었던 만큼 굿의 짜임새가 발달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또한, 세습무계가 발달해 있어 다양한 예능이 학습되고 전승되었던 것도 중요한 배경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러한 점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독특한 문화권 또는 무속권을 형성했을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