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10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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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住岩趙擎韓家屋 |
영어공식명칭 | Jiam Jo Gyeong-han's House |
영어음역 | Jiam Jo Gyeong-han's House |
영어공식명칭 | Jiam Jo Gyeong-han's House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한곡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남호현 |
현 소재지 | 주암조경한가옥 -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한곡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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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재지 | 주암조경한가옥 -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한곡리 |
성격 | 전통 가옥 |
양식 | 기와집[원래 초가집] |
정면 칸수 | 좌우퇴가 있는 5칸 |
측면 칸수 | 전후퇴가 있는 1칸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한곡리 한동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전통 가옥.
[독립운동가 조경한]
조경한(趙擎韓)[1900~1993]은 1900년 순천군 주암면 한곡리 한동마을에서 태어났다. 1921년 만주에 있는 독립단의 국내 지하공작 연락원으로 활약하다 1926년 만주로 옮겨 배달청년회와 배신학교를 창설하여 교포들에게 애국항일사상을 높이고 일깨우는 데 앞장섰다. 이후 유격독립여단을 이끌고 북만주, 동만주에서 3년 동안 100여 차례 전투에 참여했다. 1937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국회]의원으로 선임되었고, 1944년 한국독립당 훈련부장에 지명돼 백범(白凡) 김구(金九)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내공작위원회 일원으로 활약했다. 광복 이후 정부로부터 독립장을 받았고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 때 고향 순천에서 당선됐다.
[위치]
순천시에서 22번 국도를 타고 승주를 지나 약 38㎞ 정도를 가다 보면 주암에 도착하게 된다. 주암 향약재가 있는 순천시 주암면 한곡리 한곡마을을 지나 0.4㎞ 정도 가다 보면 한국전력공사가 나오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약 0.6㎞ 정도 들어가다 보면 순천시 주암면 한곡리 한동마을이 보인다. 주암조경한가옥은 한동마을의 끝자락에 위치한다.
[변천]
주암조경한가옥은 순천시 주암면 한곡리의 한동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으로 13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순천시는 2019년 말까지 ‘독립운동가 조경한 선생 생가 복원사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형태]
주암조경한가옥은 남서향으로 안채 대청마루에 앉으면 멀리 옥녀산이 한눈에 보인다. 먼저 대문은 철문으로 바뀌었고, 대문 우측에 있는 농기계 창고는 원래 소, 돼지를 키우는 축사였다고 한다. 담장은 원래 흙담이었으나 지금은 시멘트 블록 벽으로 바뀌었다. 넓은 안마당 안쪽으로 안채가 있고, 그 우측으로 사랑채로 들어가는 중문이 있다. 안채 뒤편으로 장독대가 있고 후면에 조상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사당은 정면 1칸, 측면은 전퇴가 있는 1칸 건물이다.
안채는 남서향으로 좌우퇴가 있는 정면 5칸, 전후퇴가 있는 측면 1칸의 ‘一’자 집이다. 원래는 초가지붕이었으나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슬레이트지붕으로 고쳤다고 한다. 지붕은 막돌허튼층쌓기로 하였다. 막돌초석 위에 기둥은 네모기둥으로 하였다. 안채는 좌로부터 정지, 안방, 대청, 건넌방의 순으로 되어 있고, 정지는 현재 사용하지 않고 대청 부분을 고쳐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랑채는 안마당에서 우측의 중문을 통해서 들어간다. 사랑채는 약 90년 전에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사랑채 역시 남서향이며 좌우퇴가 있는 정면 4칸, 전후퇴가 잇는 측면 1칸의 ‘一’자 집이다. 기단은 막돌 허튼층쌓기로 하였고, 초석은 잘 다듬은 인공초석으로 하였다. 가구(架構)[기둥이나 공포 위에 얹혀 내부공간을 형성하는 구조나 구조물의 총칭]는 5량(梁) 구조이며 팔작지붕에 겹처마로 하였다. 평면의 구성은 부엌, 안방, 마루방, 건넌방의 순으로 되어 있다.
[현황]
주암조경한가옥은 2019년 현재 복원 중이다.
[의의와 평가]
주암조경한가옥은 독립운동가의 생가로, 130여 년이나 사용되고 있어 역사적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