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600677
한자 林學洙
영어공식명칭 Im Hak-su
영어음역 Im Hak-su
영어공식명칭 Im Hak-su
이칭/별칭 악이(岳伊),임악이(林岳伊),임영택(林榮澤),임내홍(林乃洪)
분야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전라남도 순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현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1년 7월 3일연표보기 - 임학수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26년 - 임학수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입학
수학 시기/일시 1931년 - 임학수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입학, 영문과 재학
활동 시기/일시 1931년 - 임학수 『동아일보』에 시 「우울」·「여름의 일순」 발표하며 등단
수학 시기/일시 1936년 - 임학수 경성제국대학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37년 8월 - 임학수 첫 시집 『석류』 간행
활동 시기/일시 1938년 10월 - 임학수 두 번째 시집 『팔도풍물시집』 간행
활동 시기/일시 1939년 1월 - 임학수 세 번째 시집 『후조』 간행
활동 시기/일시 1939년 3월 - 임학수 『현대영미시선 조선문고』 간행
활동 시기/일시 1939년 9월 - 임학수 『전선시집』 간행
활동 시기/일시 1946년 8월 - 임학수 『세계단편선집』 출간
활동 시기/일시 1948년 7월 - 임학수 『필부의 노래』 출간
몰년 시기/일시 1982년 6월 21일연표보기 - 임학수 사망
출생지 임학수 출생지 - 전라남도 순천시 금곡동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임학수 수학지 - 서울특별시
활동지 임학수 활동지 - 서울특별시
활동지 김일성종합대학 - 북한
성격 작가
성별
대표 경력 고려대학교 교수|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 학장

[정의]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의 작가.

[활동 사항]

임학수(林學洙)[1911~1982]는 현 전라남도 순천시 금곡동 출신으로 10대 초반에 서울로 유학하여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와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하였다. 1925년 6월 ‘나의 희망’이라는 제목으로 소년소녀웅변대회에 참가했다. 1930년 7월 순천유학생회 임원으로 전라남도 지역에 수해가 발생하자 수해구제위원으로 활동했다. 경성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후 경성제국대학 조수(助手)를 지내기도 했다. 그 후 해방이 될 때까지 호수돈여자고등학교·경신여자고등학교·한성상업·배화여자고등학교·성신여학교 교사를 지냈다.

임학수는 1936년 9월 잡지 『전남평론』을 주재하였고, 1939년 4월 소설가 김동인(金東仁)[1900~1951], 평론가 박영희(朴英熙)[1901~?] 등과 더불어 북중국 일대를 여행하였다. 1939년 10월 조선문인협회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1943년 문인보국회 시부회 간사로 활동하였다. 해방 이후 서울여자대학교 강사, 고려문화사 주간, 고려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고, 좌익계열의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조선문학가동맹, 한국문학가협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다 6.25전쟁 중 북한으로 가게 되었다. 월북 작가로 알려졌으나 가족들은 납북을 주장하고 있다.

임학수는 북한에서는 김일성종합대학 초대 영어 교수·외국어 학장 등 역임하면서 북한의 문학작품을 번역하는 한편 찰스 디킨스 등의 영문학 관련 작품과 평론을 번역 발표하였다.

임학수는 순천 출신의 천재적인 시인이었지만, 일제강점기의 지식인으로서 겪는 민족 상실의 상념 끝에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하는 친일 활동에 참여하고 말았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15의 224쪽부터 251쪽에 임학수의 활동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저술 및 작품]

임학수는 1931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한 후 『동아일보』에 시 「우울(憂鬱)」과 「여름의 일순(一瞬)」을 발표하며 등단한 후 『학등(學燈)』·『문학(文學)』·『카톨릭청년』 등에 시를 발표했다. 1937년 8월 첫 시집 『석류(石榴)』, 1938년 10월 두 번째 시집 『팔도풍물시집(八道風物詩集)』, 1939년 1월 세 번째 시집 『후조(候鳥)』에 이어 1939년 3월 『현대영미시선 조선문고』, 1939년 9월 『전선시집(戰線詩集)』을 간행했다. 해방 이후 1946년 8월 『세계단편선집』, 1948년 7월 『필부의 노래』를 출간했다.

초창기 문예 활동은 전라도 출신 시인들이 많았던 김영랑(金永郎)[1903~1950]·박용철(朴龍喆)[1904~1938]·정지용(鄭芝溶)[1902~1950] 등 시문 학파와의 연계 하에서 이루어졌다. 그중에서도 같은 영문학 전공자였던 정지용과 교분이 남달랐고 정지용의 도움으로 문필활동을 전개하였다. 초기 시는 경성제국대학 영문학과의 학풍에 영향을 받아 주로 영국 낭만주의 시의 자장 안에서 창작되었다. 행과 연의 배치에 있어서 일정한 반복적 패턴을 사용하는 균제된 형태미를 갖추고 있으며 소재에서도 자연 사물을 활용하여 생에 대한 허무나 우울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임학수의 작품들에 주로 등장하는 여행의 모티프들은 우울한 감정과 과거에 대한 동경을 주조로 한 낭만주의적 열정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1939년 김동인·박영희 등과 북중국을 여행하고 돌아와 발간한 『전선시집』에서는 민족 상실의 상념을 대리보충 할 수 있는 일제의 관념을 수용하기도 했다. 『전선시집』으로 인해 임학수는 친일적 지식인이자 시인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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