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6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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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廷基 |
영어공식명칭 | Seo Jeong-gi |
영어음역 | Seo Jeong-gi |
영어공식명칭 | Seo Jeong-gi |
분야 |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재성 |
출생 시기/일시 | 1897년 3월 6일 - 서정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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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4월 1일 - 3.1운동 중 경성부에서 독립운동 고취문서 배포 시작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 서정기 재일본 조선유학생동맹 조직하여 부위원장으로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25년 - 서정기 지린성에서 체포 |
몰년 시기/일시 | 1964년 8월 30일 - 서정기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서정기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서정기 출생지 - 전라남도 순천시 장천동 179 |
거주|이주지 | 서정기 거주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
학교|수학지 | 중앙학교 - 서울특별시 |
학교|수학지 | 명치대학 - 일본 도쿄 |
묘소 | 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순천 출신으로 국내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서정기(徐廷基)[1897~1964]는 현 전라남도 순천시 장천동에서 태어났다. 서정기는 1919년 3.1운동 당시 23세의 사립 중앙(中央)학교 4학년 학생으로서 경성부 와룡동(臥龍洞) 57번지[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서병조(徐丙祚)의 집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후 1919년 4월 서정기의 집에서 공흥문(孔興文)·장용하(張龍河)[1900~1978]·이춘봉(李春鳳)[1900~?]과 함께 모두 4차례에 걸쳐 등사판을 이용하여 독립운동을 고취할 문서를 인쇄하여 배포했다. 먼저 1919년 4월 1일 「반도(半島)의 목탁(木鐸)」이란 문서를 약 100매, 1919년 4월 12일 「반도의 목탁」 제2호를 약 100매, 13일 「8면에서 관찰한 조선의 참상」이란 문서를 1부 8매의 것 20부, 1919년 4월 22일 「반도의 목탁」 제3호를 100매, 1919년 4월 25일 「반도의 목탁」 특별호를 약 70매 인쇄하여 경성부 내에 배포했다. 문서를 배포한 일로 징역 1년형에 처해졌다. 이후 1921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유학 중에 유학생을 중심으로 한 비밀결사단체인 재일본 조선유학생동맹(在日本朝鮮留學生同盟)을 조직하여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25년에는 북간도(北間島)에서 김창진(金昌珍)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다가 지린성[吉林城]에서 체포되어, 5년형을 선고받고 신의주(新義州)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묘소]
서정기는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809에 안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서정기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