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5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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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允文 |
영어공식명칭 | Seong Yun-mun |
영어음역 | Seong Yun-mun |
영어공식명칭 | Seong Yun-mun |
이칭/별칭 | 정노(廷老),만휴(晩休)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욱 |
[정의]
조선 후기 순천 출신의 무관.
[가계]
성윤문(成允文)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정노(廷老)이고 호는 만휴(晩休)이다. 아버지는 판서 성효원(成效元)으로 순천 해촌에 살았다. 성윤문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생몰연대 및 자세한 가계는 알 수 없다.
[활동 사항]
성윤문은 1591년(선조 24) 갑산부사로 부임하여 재직 중, 1592년 임진왜란으로 인해 함경남도병마절도사 이영(李瑛)[?~1596]이 임해군(臨海君)·순화군(順和君) 두 왕자와 함께 일본군에게 잡혀가자 이영의 후임이 되었다. 1593년 형벌을 너무 엄히 하여 군민들의 불평이 커 탄핵을 받았지만, 1593년 함흥부 허호리(噓呼里) 지방에서 일본군을 물리쳤다. 1594년(선조 27) 경상우도병마절도사로 부임하였으나 사간원에 의해 군율이 가혹하고 탐욕스럽다는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성윤문은 1596년(선조 29) 진주목사(晉州牧使)에 제수되었다가 다시 경상좌도병마절도사에 올라 의흥(義興)·경주(慶州) 일대에서 적을 물리쳤다. 1598년 일본군 포로로부터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죽어 일본군이 철수할 예정이라는 정보를 입수하여 조정에 올려 이에 대비토록 하였다. 1598년 제주목사로 부임하였다가 1601년(선조 34) 수원부사(水原府使)를 거쳐 충청도수군절도사·평안도병마절도사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