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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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黃玹肖像寫眞 |
영어공식명칭 | Portrait and Photography of Hwang Hyeon |
영어음역 | Portrait and Photography of Hwang Hyeon |
영어공식명칭 | Portrait and Photography of Hwang Hyeon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장모창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의 황현 후손이 보관하고 있는 매천 황현의 초상화 및 사진.
[형태 및 구성]
매천(梅泉) 황현(黃鉉)[1855~1910]은 전라남도 광양 지역에서 태어났다. 조선 말기 시인이며 문장가이자 유교 지식인으로서 조선 말기와 한말의 사회상에 대한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일제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자 자결로서 항거한 우국지사이다. 황현 초상 및 사진은 황현이 자결하기 1년 전인 1909년 서화가 김규진(金圭鎭)[1868~1933]이 운영한 천연당(天然堂) 사진관에 찍은 사진과 이를 모본으로 하여 1911년 제작된 초상화로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황현 초상 및 사진은 황현의 사진과 초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황현 사진은 갓을 쓴 반신상으로 완전한 정면상이 아닌 좌측으로 몸을 약간 틀고 의자에 앉아 있는데 손에는 부채를 들고 있다. 황현 사진 좌측 탁자 위에 『주자대전(朱子大全)』이 펼쳐져 있다.
황현 초상은 세로 95㎝, 가로 65.5㎝의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린 것이다. 심의(深衣)를 입고 포대(布帶)를 맨 뒤 정자관(程子冠)을 쓴 모습이다. 도상(圖像)은 안경을 쓰고 오른손에는 부채를 들고 왼손에는 책을 든 채 바닥에 화문석 돗자리를 깔고 앉은 전신부좌상(全身趺坐像)인데, 몸은 약간 좌측으로 틀고 있다. 뒷면에 “신해 오월 상한 금마 종이품 행정산군수 채용신 임진(辛亥五月上澣金馬從二品行定山郡守蔡龍臣臨眞)” 기록이 남아 있어 신해년인 1911년 초상화의 대가인 석지 채용신이 그린 작품임을 알 수 있다.
[특징]
황현이 쓰고 있는 정자관 속의 망건이 비쳐 보일 만큼 투명하게 나타나 있고, 발의 올이 겹쳐져 있어 매우 사실적이다. 얼굴 피부는 살아 있는 사람의 살갗을 재현시킨 듯한 면처리를 하고 있으며, 안경 속의 눈동자, 살갗 속에 배어 있는 주름은 육리문(肉理紋) 그대로이다. 콧날의 광채와 콧방울 윤곽, 붉은 입술, 자연스러운 손의 표현 등에서 마치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와 더불어 자세의 굴곡에 따라 잘 표현된 심의의 묘사는 황현 초상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어 진실에 가까운 사조(寫照)를 통해 황현의 고매한 혼을 잘 드러내고 있다. 황현 초상 및 사진은 2006년 12월 29일 보물 제1494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황현 초상은 사진 속 황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기보다는 유학자의 풍모를 표현하기 위해 자세나 의복 등에 변형을 시도하였고, 사진 속의 여러 요소를 조합, 변형하여 자신만의 개성을 지닌 초상화로 변모시켰다. 또한, 황현 초상은 매우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여 석지 채용신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