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4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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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順天 望北亭 遺址碑 |
영어공식명칭 | Yujibi Monument at Mangbukjeong Pavilion, Suncheon |
영어음역 | Yujibi Monument at Mangbukjeong Pavilion, Suncheon |
영어공식명칭 | Yujibi Monument at Mangbukjeong Pavilion, Suncheon |
이칭/별칭 | 충숙공 망북정비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용당동 33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희태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용당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이수가 망북정 옛터에 세운 비.
[건립 경위]
망북정(望北亭)은 조선 왕실의 종친인 귀천군(龜川君) 이수(李睟)[1569~1646]가 순천 지역에 귀양을 온 후 북쪽을 바라보는 마음을 나타내 지은 정자이다. 이수의 자는 명원(明遠)이며 중종의 아들 덕양군 이기(岐)의 손자로 풍산군 이종린의 아들이다. 광해군 때 종실 18인과 함께 이이첨을 논척하는 상소를 올려 순천으로 유배되어 5년간 지냈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이수의 묘소와 신도비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궁내동 산 17에 있다. 이수의 6세손인 이동선이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부임하여 1781년(정조 5) 10월 망북정 옛터에 순천망북정유지비를 세웠다.
[위치]
순천망북정유지비는 순천시 용당동 망북마을[‘다래골’, ‘닻고개’로 불려옴] 회관 앞에 있다.
[형태]
순천망북정유지비는 별다른 문양이 없는 위가 넓고 아래가 약간 좁은 호패형의 석비로 사각방형의 좌대에 홈을 파고 세웠다.
[금석문]
순천망북정유지비 앞면에 큰 글자로 ‘조선 종신귀천군충숙공휘수망북정유지비(朝鮮 宗臣龜川君忠肅公諱睟望北亭遺址碑)’라는 기록이 3행 종서로 음각되어 있다. 앞면 왼편[향좌]에 ‘숭정기원후삼신유십월 일육세손호남좌도수군절도사동선근서각립(崇禎紀元後三辛酉十月 日六世孫湖南左道水軍節度使東善謹書刻立)’이 1행 종서로 새겨져 있다.
[현황]
이수의 문집인 『충숙공유고(忠肅公遺稿)』「망북정기」에 따르면 이수는 1617년(광해군 9) 1월 순천으로 귀양 온 후 1621년 6월까지 머물렀는데, 처음에는 성의 남쪽 연자루 근처에 살았다. 1618년 성 북쪽의 대미곡(大未谷)으로 이사를 했는데, 그 이유는 북쪽을 바라보는 간절한 정성이 가슴속에 사무쳐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초가 2칸을 손수 지어 당(堂)의 이름을 ‘망북’이라 한 것도 바로 이런 뜻이었다고 한다.
1985년 정면 1칸 측면 1칸 팔작지붕의 비각인 ‘망북정유지비각(望北亭遺址碑閣)’을 건립하였다. 순천망북정유지비 비각 안에는 이수의 시 2수와 후손들이 지은 ‘유지비각중건기(遺址碑閣重建記)’, ‘유지비각수립기(遺址碑閣竪立記)’ 현판이 걸려 있다. 1990년 3월에는 전주이씨 덕양군파종친회에서 추모비를 세웠다.
[의의와 평가]
순천망북정유지비는 조선시대 유배 인물의 행적을 알 수 있고 순천 지역의 역사 현장을 증명해 주는 유적이다.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