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4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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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廣寺史蹟碑 |
영어공식명칭 | Stele at Songgwangsa Temple |
영어음역 | Stele at Songgwangsa Temple |
영어공식명칭 | Stele at Songgwangsa Temple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신평리 12]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장모창 |
[정의]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 부도암 부도군에 세워진 송광사의 사적을 기록한 비석.
[건립 경위]
송광사사적비는 1678년(숙종 4) 취미의 제자인 백암(栢庵) 성총(性聰)[1631~1700]이 송광사보조국사비와 함께 건립을 주관하여 세운 비이다. 비문은 조종저(趙宗著)가 짓고 낭선군(朗善君) 이우(李俁)가 쓰고 낭원군(朗原君) 이간(李偘)이 전액을 썼다.
[위치]
송광사사적비는 29기의 승탑과 5기의 비석으로 이루어진 송광사 부도암 부도군 제일 상단에 송광사보조국사비와 함께 세워져 있다.
[형태]
송광사사적비는 장방형의 석재를 2단으로 치석 하여 비신을 올리고, 1단의 각형 받침을 마련하여 비신과 결합하였는데, 하단에는 앙련[꽃부리가 위로 향한 연꽃무늬]을 조식하였고 그 윗부분에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는 용두형(龍頭形) 거북이가 조각되어 있다. 거북 조각은 볼록 튀어나온 눈, 코, 입, 목주름, 귀갑문, 발톱 등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거북 위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쌍용이 보주를 다투는 모습이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으나 다소 생동감은 떨어진다. 비신 앞면 상단에 전서(篆書)로 ‘조계산송광사사적비(曹溪山松廣寺事蹟碑)’라고 제액하였다. 비제는 해서(楷書)로 ‘승평조계산송광사사원사적비(昇平曹溪山松廣寺嗣院事蹟)’라 하였다.
[금석문]
순천 송광사는 고려의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1158~1210]이 대찰로 중창한 이래 16국사가 차례로 활동하여 선법의 계승에 으뜸을 차지하였고, 조선 중기에는 부휴(浮休) 선수(善修)[1543~1615]와 벽암(碧巖) 각성(覺性)[1575~1660], 취미(翠微) 수초(守初)[1590~1668]로 이어지는 법맥이 고려 못지않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말선초의 나옹화상(懶翁和尙) 혜근(惠勤)[1320~1376]과 무학이 송광사에서 활약한 것은 태고가 중국 임제종을 이어와 부휴에게까지 계승된 법맥과 다름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송광사사적비는 2단의 장방형 석재를 사용한 비좌[비신과 비대석이 맞닿아 있는 부분]는 일반적인 조선 후기 사찰 사적비의 비좌에 비해 간략화된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이수에서 귀부 모양의 거북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어 다른 비석의 이수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송광사사적비는 조선 후기 비석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