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6003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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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㰱平郡 |
영어공식명칭 | Sappyeong-gun |
영어음역 | Sappyeong-gun |
영어공식명칭 | Sappyeong-gun |
이칭/별칭 | 원촌현,돌산현,마로현,사평,무평,순천시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남도 순천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이욱 |
[정의]
백제시대 전라남도 순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의 명칭.
[명칭 유래]
순천의 가장 오래된 이름은 ‘모래드리’ 또는 ‘사평(沙平)’으로 추측된다.
김정호의 『여도비지(輿圖備誌)』에서 순천도호부를 삽평(歃平), 사평, 무평(武平)이라 했다. 그러나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는 사평, 무평이라 하고, 무평(畝平)은 잘못된 것이며, 사평을 순천의 맨 처음 읍호로 규정하였다.
또한, 현 전라남도 순천시 남내동에 거주한 조천석은 옥천 옥천교 남쪽의 꺼진 물목을 ‘고래목[鯨項]’이라 불렀다. 순천시립도서관 소장 옛 지도에도 이 지역을 ‘경동(鯨洞)’으로 표기하고 있다. 제방 공사가 이뤄지기 전에 이 일대에는 물길 이동의 흔적이 뚜렷했다. 또 순천부사 성이호(成彛鎬)가 동천 가운데 모래톱에 지은 우선정(遇仙亭)이 모래톱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실제로 옥천과 동천 이 두 내의 강터는 1935~1940년 제방 공사가 끝나기까지 모래가 차지한 면적이 엄청나게 넓었다고 한다. 해마다 홍수가 나면, 강바닥이 높아지면서 현 순천시 풍덕동 양쪽 들판에 물이 차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이곳이 선사시대이래 ‘모래드리’·‘사평’이라 불린 지명유래를 짐작할 수 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의하면, 삽평군은 삽평군의 속현인 원촌현(猿村縣)[현재 전라남도 여수시 일대], 돌산현(突山縣)[현재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일대], 마로현(馬老縣)[현재 전라남도 광양시 일대]을 다스렸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서 삽평군 관련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삽평군이란 명칭에서 ‘삽’은 시대별로 기록된 게 달랐다. 1145년(인종 23) 『삼국사기』 지리지에서 삽(歃)으로 기록되었다. 1451년(문종 1) 정인지 등이 오인하고 『고려사』에 감(欿)으로 잘못 썼다가 1454년(단종 2) 『세종실록지리지』에 삽(歃)으로 정정해서 기록하였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세종실록지리지』를 보지 않은 채 『고려사』에 잘못 기록된 감평을 그대로 썼다. 순천도호부사 이수광 역시 『삼국사기』, 『세종실록지리지』의 ‘삽평’을 보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김정호가 『여도비지』에서 삽평군으로 바로잡았고, 후에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는 삽평의 원초적인 이름인 사평으로 고쳤다.
최근 순천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한 순천 봉화산성에서는 ‘사평관(沙平官)’명 기와가 확인되어 앞으로의 조사성과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