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8004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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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坐鄕 |
영어음역 | Jwa-hyang |
영어의미역 | Jwa-hyang Local District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월성리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주명준 |
[정의]
고려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 고창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구역.
[개설]
향(鄕)은 신라 때부터 고려 때까지 있었던 특수 지방 행정구역의 하나이다. 향소부곡은 군현보다 작은 지역 단위였는데, 주민들은 일반적으로 농사나 특산물을 생산하는 천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양인이 거주하며 생산 활동을 하는 말단 행정구역이었다는 학설이 새롭게 나오고 있다. 향은 조선 전기까지 존재하다가 점차 소멸되었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고창현조에 “고창현에 갑향·남조향·북조향이 있다[高敞縣鄕三甲鄕南調鄕北調鄕].”, 『세종실록지리지』 흥덕현조에 “흥덕현에 향이 네개 있는데, 좌향·갑향·남조향·북조향이 있다[興德縣鄕四左鄕甲鄕南調鄕北調鄕].”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고창현과 흥덕현에 똑같이 갑향, 남조향, 북조향이 있다는 것은 아마도 같은 곳의 내용을 두 지역에 실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고려 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고창 지역은 흥덕감무가 겸임한 곳이므로 흥덕 관내에 속하였는데 『세종실록지리지』 고창현조에 잘못 게재되었다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와서야 바로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고창현 고적조에 “대량평부곡은 현의 남쪽 15리에 있다[大良坪部曲在縣南十五里].”, “도성부곡은 현의 북쪽 15리에 있다[陶成部曲在縣北二十五里].”, “덕암소는 현의 북쪽 29리에 있다[德巖所在縣北二十九里].”, 흥덕현 고적조에 “좌향은 현의 동쪽 8리, 남조향은 현의 남쪽 13리, 북조향이 현의 북쪽 10리에 있다[坐鄕在縣東八里南調鄕在縣南十三里北調鄕在縣北十里].”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고창현 고적조에 대량평부곡·도성부곡·덕암소만 기록하고 남조향과 북조향은 흥덕조에만 기록하여 『세종실록지리지』의 오류를 바로잡았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에 보이는 갑향을 뺀 것은 이때 이미 갑향이 폐지되고 신림면 가평리(加平里)로 승격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내용]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좌향(坐鄕), 『세종실록지리지』에 좌향(左鄕)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두 문헌 다 흥덕현에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좌향의 위치는 현의 동쪽 8리인데, 『고창군지』를 비롯한 모든 문헌이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하고 다만 방향이나 거리로 보아 성내면 어느 마을일 것으로 추측해 왔다.
[현황]
성내면사무소 면장과 부면장과 함께 면밀히 조사한 결과 좌향의 위치를 고창군 성내면 월성리 항월로 비정할 수 있었다. 흥덕현의 정동(正東)이 이동면인데 이동면이 지금의 성내면이고, 흥덕현에서 정확하게 동쪽으로 8리 떨어진 곳은 성내면 월성리 항월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항월은 옛날의 점촌과 항월이 합하여 된 마을이다. 점촌은 조선 시대까지 옹기나 자기를 구워 팔던 옹기점이 있던 곳이어서 붙인 이름인데, 주민들이 점촌이라는 이름을 몹시 싫어하여 지금은 이 명칭을 쓰지 않는다. 아마도 차별대우를 받았던 옛 이야기가 전해 내려왔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보건대 항월을 중심으로 한 일대가 옛날 천민들이 살던 좌향이 있던 곳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으나 확실한 연구와 조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