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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1286
한자 六二五良民犧牲者慰靈塔
영어음역 Yugio Yangmin Huisaengja Wiryeongtap
영어의미역 Korean War Civilians Victims Memorial Tower
이칭/별칭 공음면 선산마을 위령탑,선산마을 위령탑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선산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주경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위령탑
건립시기/연도 2007년 4월 5일연표보기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선산마을 지도보기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선동리 선산마을에 있는 6·25전쟁 때의 양민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위령탑.

[개설]

6·25양민희생자위령탑은 1950년 6·25전쟁 당시 국군과 경찰에 의해 빨치산으로 몰려 무고하게 희생당한 선산마을 주민 510명의 영혼을 위로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소위 ‘고창 11사단 사건’으로 불리는 고창 양민 집단 희생 사건은 공비 토벌 작전에 투입되었던 국군 11사단이 무고한 양민들을 공비로 몰아 학살한 것으로, 전국에서 단일 학살로서는 최대의 양민이 학살된 사건이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50년 12월부터 1951년 3월까지 전라북도 고창군 일대에서 국군 제11사단에 의해 민간인이 집단으로 희생되었는데, 인근 지역 피난민과 마을 주민 등 최소 273명이 희생된 것으로 밝혀졌다.

[건립경위]

1993년 전라북도 의회에서는 6·25양민학살진상실태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1950년 6·25전쟁 당시의 양민 희생자 실태를 파악하였다. 이후 고창군 6·25양민희생자제전위원회[위원장 황긍선]에서는 2003년 고창군 6·25양민희생자위령탑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2005년 1억 2천여만 원을 예산으로 공음면 선동리 선산마을에 부지를 마련하였다. 이듬해인 2006년 4월에 착공하여 2007년 4월 5일에 제막식을 가졌다.

[위치]

선산마을의 성인봉 일대에서 1950년 6·25전쟁 당시 가장 많은 양민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위로하기 위해 선산마을에 건립되었다.

[현황]

고창군 6·25양민희생자제전위원회에는 6·25양민희생자위령탑에서 매년 4월 초에 6·25전쟁 당시 숨진 양민 희생자에 대한 합동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이 위령제에는 고창군수를 비롯한 고창 지역 유력 인사들과 피해자 유족, 마을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고창군 6·25양민희생자제전위원회는 또한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명예 회복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다.

6·25전쟁 당시 고창 지역에서 벌어진 국군의 공비 토벌 작전으로 희생된 유족들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에 맞춰 2008년 4월 15일 위령탑에서 ‘고창 11사단 사건 고유제(告由祭)’를 열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6·25전쟁 기간 동안 고창 지역에서 발생한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이 반세기가 넘어서야 국가 차원에서 진실이 규명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8년 4월 8일 제69차 회의에서 ‘고창 11사단 사건’ 등에 대해 진실을 규명하고 국가의 공식 사과와 위령 사업 지원 등을 권고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전시 계엄 하 국군의 수복 과정이라는 극히 혼란한 상황이었으나 국군이 적법한 절차 없이 비무장, 무저항의 민간인을 집단 살해한 것은 인도주의에 반한 야만적 행위로서 헌법에서 보장한 생명권을 침해하고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며 국가의 공식 사과 권고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6·25전쟁 당시 양민 희생자 유가족들의 한이 조금이나마 풀어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고, 이들의 명예 회복을 위한 기반이 마련되었다. 국가가 국민에게 자행한 사건에 대해 유가족들에게 진실하고 충분한 사과를 하고 다시는 후세들에게 이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훈을 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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