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1229
한자 趙應斗妻文化柳氏旌閭
영어음역 Jo Eungdu Cheo Munhwa Yussi Jeongnyeo
영어의미역 Memorial Gate for Lady Yu, Jo Eungdu's Wif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월암리 220[월암길 20-1]
집필자 주명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려
정면칸수 1칸
측면칸수 1칸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월암리 220[월암길 20-1]지도보기
소유자 직산조씨 종중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월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조응두의 처 문화유씨의 정려.

[개설]

직산 조응두(趙應斗)의 처 문화유씨는 사용(司勇) 유대기(柳大器)의 딸이다. 정유재란에 부부가 함께 산곡에 숨어 있다가 남편이 왜적에 쫓겨 달아나자 문화유씨가 그 뒤를 따르다가 왜적에게 붙잡혔다. 왜적이 문화유씨를 겁탈하려 하자 이에 응하지 않고 끝내 절사(節死)하였다. 조정은 이 사실을 알고 정려를 명했다.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이 기문(記文)을 찬(撰)했다.

[위치]

고창읍 공용터미널을 지나 석정온천 가는 길에 월암리 월암마을이 있다. 이곳에 조응두 처 문화유씨 정려가 있다.

[형태]

돌담을 둘러 구획한 대지에 원형주초를 하고 두리기둥을 세워 창방에 결구하였다. 정면 1칸, 측면 1칸에 팔작지붕이다. 현판에는 ‘열녀 학생직산 조응두처 문화유씨지려 현종신해명정(烈女学生稷山趙應斗妻文化柳氏之閭顯宗辛亥命旌)’이라 쓰여 있다.

[의의와 평가]

전쟁이 일어나면 남자는 전쟁터에 나가 싸워야 했고, 집에 남아 있는 부녀자나 노약자 역시 그에 못지않은 고통을 당하게 마련이다. 전쟁이 일어나고 여자가 외적에게 능욕을 당한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문화유씨처럼 절개를 지키고 남편을 따라 순절하여 후세에 귀감이 된 경우도 많았음을 알게 해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