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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승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967
한자 曺悳承
영어음역 Jo Deokseung
이칭/별칭 백거(伯據),흠재(欽齋)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시대 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정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학자
출신지 전라북도 고창군
성별
생년 1873년 3월 9일연표보기
몰년 1960년 12월 21일연표보기
본관 창녕

[정의]

근대와 현대 고창 출신의 유학자.

[개설]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백거(伯據), 호는 흠재(欽齋)이다. 1873년(고종 10)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고산서원(高山書院)에 배향된 동오(東塢) 조의곤(曺毅坤)이고 아버지는 무우당(無憂堂) 조석휴이고 어머니는 탐진안씨 안기순의 딸이다. 아들은 조병후(曺秉厚)이다.

[활동사항]

조덕승(曺悳承)은 4세 때부터 18세까지 할아버지 밑에서 글을 배웠다. 21세 때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동문 학우와 함께 강학하며 강규(講規)를 정하고 실천하니 따르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1895년(고종 32)인 23세 때부터 기우만(奇宇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25세 때는 충청북도 청양 가채리에 있던 최익현(崔益鉉)을 찾아가 할아버지 조의곤의 묘갈문을 청하였다. 1918년 고종이 죽자 상복을 입고 학도들과 함께 망곡(望哭)하였다. 이후 조덕승은 동오정(東塢亭)에서 후진을 강학하는 데 힘썼으며, 1920년 정산강당(鼎山講堂), 1922년 삼오당(三吾堂)을 중수하였다. 1960년 월산정(月山亭)에서 향년 88세로 죽었다.

[저술 및 작품]

1897년 최익현을 만난 뒤 「영포대시(影浦臺詩)」를 지었다. 1899년(고종 36) 『노사집(蘆沙集)』 간행에 힘쓰는 한편, 할아버지의 유집인 『동오유고(東塢遺稿)』를 간행하였다. 1901년에는 「고풍(古風)」 6편을 지었다. 1916년 기우만이 죽자 「제송사선생문(祭松沙先生文)」을 지었다. 저서로 1970년 문인 정홍채(鄭泓采)와 아들 조병후(趙秉厚) 등이 편찬한 『흠재유고(欽齋遺稿)』 9권 3책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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