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704
한자 孝子
영어음역 hyoja
영어의미역 Dutiful Son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주명준

[정의]

고창 지역 출신이거나 고창에 연고가 있는 사람으로서 부모를 효성으로 극진하게 봉양한 자녀.

[개설]

가계(家系)의 연속이 중요시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족 제도 하에서는, 넓게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좁게는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가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우선하는 근원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이(李珥)는 『성학집요(聖學輯要)』에서 사친(事親)의 도리를 언급하면서 “대체로 효도는 부모를 섬기는 일에서 시작하고, 임금을 섬기는 일이 중간이 되며, 입신하는 것을 맨 마지막에 둔다.”는 공자(孔子)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공자는 『논어(論語)』 위정 편에서 “예에 어긋남이 없게 하는 것”이 효라고 했다. 이렇듯 자식의 일체의 행동은 효도와 관련하여 평가되었고, 자식은 그의 일생을 통하여 ‘예에 어긋남이 없이’ 효도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지배한 전통적인 규범으로서의 효 또는 효도는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정성껏 모시는 것뿐만 아니라 사망한 뒤에도 극진히 제사를 모시는 것 등을 포함한다. 부모가 사망한 뒤에도 극진히 모신다는 말은 ‘사사여생(事死如生)’, 즉 돌아가신 부모를 마치 살아계신 것처럼 조석으로 상식을 올리고 여막에서 3년간 시묘살이를 한다는 의미이다.

조선 시대에는 유학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고 지방의 풍속을 교화하기 위해 각 관서로 하여금 효자·충신·열부·열녀를 조사하여 조정에 올려 정려(旌閭)를 세워 표창하였다. 정려가 허락되면 그 가문에 대해서는 증직을 하거나 조세와 균역을 면제해 주었다. 이렇듯 효도를 중요시한 조선 시대의 문화적인 전통은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효자를 낳았고, 그들의 지극한 효심은 학자들의 문집에 담기거나 효자비(孝子碑)의 비문에 실려서 가문의 자랑거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덕행(德行)의 표준이 되어 왔다.

[인물 및 내용]

효행의 본보기로 기록에 남아 있는 사례들 중에서 특히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면서 교화의 일익을 담당하였던 효자의 전형적인 행위는 자기희생적인 정신으로 죽을 고비에 처한 부모를 구출해 낸 효자들과 3년상 기간 중 여막(廬幕) 생활을 해 낸 효자들이다.

유필원(柳必源)[1625~1684]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는데, 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수일을 연명하게 하였고, 상을 당하자 3년의 시묘를 극진히 거행하였다고 전한다. 사후인 1722년(경종 2)에 효자로 천거되어 정려가 내리고 급복(給復)되었으며, 흥덕현감이 마을 이름을 효평리(孝坪里)라 고쳐 불렀다.

1444년(세종 26)에 신림면 외화리에서 태어난 오준(吳浚)은 28세 되던 해에 아버지가 등창이 심하여 백약이 무효하자 3일간 입으로 환부의 피고름을 빨아냈다. 또한 병세가 위급해지자 대변을 맛보고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약으로 바치는 등 정성을 다했으나 끝내 아버지가 죽자 극진히 예를 다하여 장례식을 마쳤다. 이후 어머니가 병환으로 죽자 묘 아래에 여묘막을 짓고 조석으로 시묘하였는데, 여묘막 근처에 맑은 물이 없어 5리 밖에 있는 산중턱까지 새벽마다 물병을 메고 물을 길어 나르니 손발이 붓고 터졌다. 마침내 그의 정성에 하늘이 감동하여 청천백일에 뇌성벽력이 진동하더니 여묘막 앞에 맑은 샘물이 솟아 나오기 시작했다. 이 소문을 듣고 고을 원이 달려와 인부를 동원하여 샘을 돌로 쌓아 주고 효감천이란 비를 세웠다. 오준이 시묘를 살 때 호랑이가 도와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성내면 출신의 김태정(金台鼎)은 부모의 병환에 양 손가락을 끊어 피를 입에 쏟아 목숨을 늘렸다고 한다. 이윽고 부모가 죽자 3년 동안 여막에서 시묘를 살던 중 식수가 없어 멀리 입치(笠峙)까지 가서 길러 오는데, 하루는 갑자기 벼락이 치더니 여막 근처에서 맑은 물이 솟아 나오므로 사람들이 그의 효성에 감복하여 축천비(祝泉碑)를 세워 주었다고 전한다.

이밖에도 고창 지역의 효자들은 다른 지방과 같이 부모 생전에 효성을 다하여 섬기고 음식을 정성스럽게 마련하여 드렸으며, 부모의 명을 늘려 달라고 하늘에 기도하는 등 거의가 비슷하였다. 『고창군지』에는 김질(金質), 박기호(朴奇琥), 박효형(朴孝亨), 안건(安建), 유상준(柳相浚), 유세기(柳世箕), 유필원, 이대축(李大畜), 이만기(李晩器), 이익방(李益芳), 정희주(鄭熙周), 조언징(曺彦徵), 최봉의(崔鳳儀) 등의 효자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의의와 평가]

고창 지역의 효자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효도란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서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일상생활, 즉 가정생활의 조화 있는 운영을 보장하는 하나의 제도적 장치였으며, 이 장치는 적어도 전통 사회에서는 가정생활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사회의 질서 확립에 크게 이바지하였던 것 같다. 현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전통 사회의 미풍양속이 사라지고 물질 중시의 풍조가 만연되면서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인간성 회복의 한 수단으로 효도를 강조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인 것 같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