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고창11사단사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501
한자 高敞十一師團事件
영어음역 Gochang Sibilsadan Sageon
영어의미역 Gochang Eleventh Division Eve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신순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양민 학살 사건
발생(시작)연도/일시 1950년 12월연표보기
종결연도/일시 1951년 3월연표보기
발생(시작)장소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관련인물/단체 국군 제11사단 20연대 2대대 6중대|8중대

[정의]

1950~1951년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일어난 양민 학살 사건.

[경과]

1950년 12월 22일 국군 제11사단 20연대 2대대 6중대는 공비 토벌 작전인 ‘견벽청야(堅壁淸野)’에 따라 해리면 동호리 선창가 주변과 심원면 고전리·만돌리 해안가 등지에서 인근 지역에서 몰려온 피난민 200~330여 명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해 사살하였다. 이 밖에 1951년 1월 5일 ‘토끼몰이식’으로 붙잡은 피난민 150~200여 명을 공음면 선동리 선산마을에서 새끼줄로 묶은 뒤 순환식 경기관총으로 집단 총살한 데 이어, 1951년 1월 6일 상하면 하장리 오룡마을을 집집마다 수색해 숨어 있던 마을 주민 12~16명을 상하국민학교 주변 공터에서 집단 사살하였다.

또한 8중대는 1951년 3월 13일 상하면 용대리 택동마을 부근에서 빨치산과 교전 중 척후병 1명이 희생되자 빨치산을 색출하기 위해 주민 50여 명을 총살하였고, 상하면 자룡리 고리포 바닷가의 비둘기굴에 숨어 있던 피난민 60여 명을 4열 횡대로 세워 놓고 총격을 가하였다.

[결과]

고창 지역 공비 토벌 작전 과정에서 발생한 집단 희생 사건의 가해 주체는 국군 제11사단 20연대 2대대 6중대와 8중대로 확인되었다.

[의의와 평가]

고창11사단사건은 민간인과 빨치산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전개된 토벌 작전으로 사단장 최덕신의 명령에 따라 작전 중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공비 토벌의 전과를 올리기 위해 빨치산에게 협력하였다고 간주되는 주민들을 무차별 사살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고창11사단사건의 발생 시기가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되는 전시 계엄 중이었고, 국군의 수복 과정이라는 극히 혼란한 상황이었으나 국군이 적법한 절차 없이 비무장·무저항의 민간인을 집단 살해한 행위는 인도주의에 반한 야만적 행위로서 헌법에서 보장한 생명권을 침해하고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다. 또한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빼앗거나 인신을 구속하는 처벌을 할 경우 합당한 이유와 적법한 절차에 따라야 하나 사건의 가해 부대는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고창11사단사건은 전라북도에서 고창월림사건 이후 두 번째로 진실이 규명된 사건이다. 전라남도 함평군 수복 작전 민간인 희생 사건과 더불어 6·25전쟁 당시 공비와 빨치산 토벌을 이유로 거주민과 피난민들을 집단 희생한 사건으로 의미가 깊으며, 앞으로 국가의 공식 사과와 위령 사업의 지원 및 군인과 경찰을 대상으로 한 인권교육 등을 권고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http://www.ktruth.org/)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