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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운동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476
한자 社會主義運動
영어음역 Sahoejuui Undong
영어의미역 Socialist Movement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신순철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민족 해방과 계급 해방을 위하여 전개되었던 민족 운동.

[개설]

국내에서의 사회주의 움직임은 3·1운동 이후 항일 운동과 민족 재생의 방편으로 대두되기 시작하여, 전통적 민족주의 운동에서 벗어나 계급적 사회주의 운동으로 일제에 대항하려 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 유학생 중심의 사회주의 조직인 흑도회가 조직된 후 풍뢰회·흑우회·불령사·북성회·북풍회·일월회·무산자동지회·토요회·조선노동당·서울청년회·사회주의자동맹·혁청당 등이 출몰하였다. 그러나 각 조직의 사상적 기저가 분명치 않았고, 항일 투쟁 과정에서 공동의 목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 경계선이 모호하여 이합집산이 거듭되었다. 사회주의자들의 주도한 활동으로는 소작 쟁의, 노동 쟁의, 공산주의 운동, 천도교 청년 운동, 6·10 만세운동 등을 들 수 있다.

[사회주의 운동가들]

고창 지역에서의 사회주의 활동으로 주목받은 인물은 우선 백남운(白南雲)을 들 수 있다. 백남운은 특히 한국의 원시·고대·중세의 사회 경제에 관한 경제사적 연구에 몰두하여 큰 업적을 남김으로써 한국의 경제사학 발전에 선구자적 구실을 하였다. 이밖에 1936년 「소화11년 형공 제405호」 판결문에 의하면 김명환·강학수·이은숙·김용호·김용인·조자현·김용태 등은 고창청년동맹 등을 조직한 뒤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하여 유죄 판결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고창고등보통학교의 유일석·양회영 등은 사회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비밀 결사인 S당을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홍종철(洪鍾轍)은 일제 강점기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아 기업을 운영하면서 1923년 『동아일보』 고창지국장·1920년 고창청년회 회장, 1921년 고창노동친목회 회장, 1927년 고창번영회 회장, 1935년 소방조 설립 발기인 등을 역임하며 고창 지역 사회 활동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중추원의 참의를 지내는 등 친일 의혹이 있다.

[단체 활동 내용]

뜻있는 사회주자들은 일제의 탄압에 맞서 단체를 만들어 농민·노동자들의 계몽에 앞장섰다. 이들은 야학을 개설하여 조선어를 가르쳤으며, 상조회를 만들어 일본인 농장주의 횡포에 맞섰는데, 특히 1920년대에 활성화되었던 청년회 단체로는 고창청년회를 비롯한 성송청년회·무장청년회·성내청년회·고수청년수양회 등 모두 5개의 청년 단체가 있었다. 이들 단체들은 농촌 계발과 문맹 퇴치, 모르핀 방지 등의 활동을 하면서 노동 운동과 밀접한 연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고창 지역에서 가장 먼저 창립한 사회주의 운동 단체는 고창국유소작인회로, 1913년경 강대규가 주도하여 창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주요한 내용은 알 수 없다. 노동·농민 운동 단체로 대표적인 것이 고창노동회와 무장노동회다. 고창노동회는 1921년 노동친목회로 창립했다가 1926년 고창노동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회장은 김승옥이었고, 간부로 유화종·오동균이 활동했으며, 회원은 148명이었다. 문맹 타파를 전면에 내건 고창노동회는 무산자를 위해 노동학원을 설립하였다. 고창노동회를 이끌었던 오동균은 3·1운동 당시 고창 지역 시위를 주도하였으며, 1922년 9월에는 『동아일보』 고창분국장 겸 기자로 활동하였다. 또한 고창군 부안면 중흥리에서 형평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1921년 김용섭·김건순·최태국 등의 발기로 창립된 무장노동회는 황무지 2정보 가량을 개척하여 면화를 재배하고, 그 수입을 바탕으로 빈민을 구제하고, 애경사를 보조하였다. 또한 1926년에는 회원 및 무산계급의 아동을 위해 노동학원을 운영하였다. 그 외에도 지주와 타협하여 소작료와 두량(斗量)[되나 말로 곡식 따위를 셈]을 조정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회원은 180명 정도로, 김건순·진규진·노상국 등이 간부로 활동하였다. 1929년 5월 16일에는 김건순을 회장으로 하여 소비조합을 조직하였다.

1928년 4월에 설립된 암치노동회는 회장으로 한돈을 뽑은 뒤 활동을 시작하여, 그 해 11월 관북 수재 동포 의연금을 내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또한 12월에는 암치리 2개소에 무산 아동을 위해 야학을 설치하고 갑조에 20명, 을조에 20명, 병조에 24명 등 총 64명을 수용하였다. 1929년 10월 21일에 창립된 고창미곡조합은 이채홍·신기초[고창고등보통학교 사교부장]·이만수·장일선·김영운·최수종 등이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고창소작인상회는 1923년 창립되어 활동했는데, 회장 은무성은 모르핀방지회와 고창소작인상조회평의원에서 각각 회장과 위원장 등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고창 지역에서는 해성노동친목회·덕림노동회·8[1926년 창립, 회장 이종택·김진규]·점산노동회[1928년 7월 창립, 회장 홍순정] 등이 결성되어 활동하였다.

사회주의 운동가들은 인권 해방 및 합리적인 사회 건설 등의 강령을 내걸고 과거의 지역 단위 운동에서 통합된 계급 운동 또는 민족 운동으로 전환하여 대중적 운동으로 발전시키려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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